제목 단어 하나 때문에… 2억 손배소 맞닥뜨린 이데일리

['제목만으론 명예훼손 안돼' 대법 판례]
제목 중 '합의로' 단어 해석에 이견
대웅제약 "명예훼손"… 기자에 소송
매체 측 "패소해도 비용 대신 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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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목이 사실과 달라 명예가 훼손됐다며 대웅제약이 이데일리 기자 개인을 상대로 손해 2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하고 형사고소했다. 하지만 기사 제목만으로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대웅제약은 지난 6월 이데일리 A 기자를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하고 같은 건에 대해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대웅제약이 문제 삼은 기사는 같은 달 보도된 <노무라 “메디톡스, 대웅·휴젤과 합의로 로열티 수익 4배 증가”>이다. 메디톡스가 대웅제약, 휴젤과 법적 분쟁을 해결하면 주가가 40% 이상 오를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노무라증권이 리포트로 내놓았는데 이를 전하는 내용이었다.

대웅제약은 A 기자가 메디톡스 주가를 부양하려고 대웅제약이 1심에서 패소한 뒤 승복한 것으로 오인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제목만 보면 ‘합의로’라는 표현이 이미 합의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주름 개선제인 보톡스 원료를 개발한 메디톡스는 지난 2016년 대웅제약에 500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후발주자인 대웅제약이 보톡스 원료를 훔치고 생산기술을 도용했다는 주장이었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은 대웅제약의 독자 개발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400억원 배상을 판결했다. 일련의 소송 과정으로 주가가 요동친 데다 항소심을 계속하고 있는 대웅제약 처지에서 관련 기사에 민감한 것이다.

하지만 제목만으로 명예훼손이 되는지는 다툴 여지가 있다. 2009년 대법원은 “제목이 본문 내용에서 현저히 일탈”한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본문과 별개로 다뤄서는 안 되고 기사 취지를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판례의 원심은 “독자는 제목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다음 본문 내용은 대강 넘어가기 쉽다”며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명예훼손 여부는 부분이 아닌 전체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기본적 법리를 내세웠다.

실제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이 여성신문사를 상대로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소송에서 2019년 항소심은 앞서 나온 대법원 판례에 따라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문제의 기사 제목은 <[기고] 제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입니다>였다. 하지만 본문을 보면 탁 전 행정관이 고등학생 때 합의로 성관계했다고 저서를 통해 밝힌 바로 그 중학생이 기고자 본인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자신도 학생 때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어 연대의식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트위터에 올라간 기사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500만원을 인정했다. SNS라는 수용환경을 고려하면 독자들이 기사를 열어보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이보다 앞서 2017년에는 JTBC가 기사 본문에는 전혀 언급이 없는 어버이연합을 제목에 실수로 넣어 1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이데일리는 기사가 출고된 당일 대웅제약의 요청에 따라 가정의 의미를 넣어 ‘합의 추정’으로 제목을 수정했고 수익 4배 '증가'를 '예상'으로 바꿨다. ‘합의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반론도 추가했다. 수정을 요청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 질문에 대웅제약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구체적으로 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웅제약은 또 “짧은 시간에 주주들 사이에서 기사가 다 퍼진 상태였다”며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정정보도 청구는 의미가 없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데일리는 기자 개인에게 제기된 소송이지만 손배해상 판결이 나오더라도 손배금 전부와 변호사 선임 비용을 대신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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