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공시 제도란 게 있다. 소문에 주가가 출렁일 때 부정확한 정보에 따른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다. 거래소가 요청하면 기업은 풍문이나 보도의 사실여부에 대해 1영업일 내 답해야 한다. 기업이 자율공시를 통해 먼저 해명할 때도 있다. 당초 공정한 거래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도입됐지만 상당수가 소문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뜻의 ‘미확정’ 공시로 채워지는 현실이 있다. 연합인포맥스 김경림·박경은 기자는 지난 9~11월 선보인 기획 <풍문으로 들었소>를 통해 이 제도의 유효성을 검증했다.
박 기자는 지난 15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기업 홍보실을 취재하며 늘 확정적인 답을 안 주는 데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연초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 때가 절정이었다. 주가가 많이 움직이며 피해자가 많았고 선배에게 ‘이런 식이면 누가 책임지나’고 푸념을 했는데, 몇 달 후 선배가 ‘데이터로 따져 보자’며 방법을 들고 왔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증권 쪽 취재를 오래 하며 뻔히 보이는데 모른다고 일관하는 행태에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다. 후배가 마침 말을 해줬고 진짜 피해가 있었는지, 주가가 얼마나 움직였는지 보기에 데이터가 제일 적합한 도구란 생각이었다”고 했다.
기획은 2020년 1월3일부터 2023년 8월28일까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다트’에 게재된 전체 유가증권시장 및 코스닥 공시 23만5897건 데이터를 토대로 한다. 이 중 유가증권시장 조회공시 총 837건의 현황 등을 살펴 약 70%가 ‘미확정’이란 사실을 확인했고, 이런 공시가 많았던 기업을 살펴 보도 골자로 삼았다. 특히 기사에선 연초부터 국내 인수합병 시장을 들썩이게 한 SM엔터 쟁탈전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네이버, 카카오, CJ, 하이브 등의 물밑 기싸움으로 관련 ‘미확정’ 공시만 수십 개가 나왔고, 인수전 참여 측과 매각 당사자가 줄곧 정보를 함구한 가운데 추측과 풍문을 믿고 투자한 이들이 피해를 보며 공시제도의 무색함이 결정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기사에 ‘3년간 너덜너덜해진 SM엔터 인수전’이란 소제목을 달기도 했는데, 투자자들 혼란이 정말 컸다. 실제 투자자별 순매수 상관관계를 살펴보니 개인 투자자가 공시에 제일 많이 휘둘렸다는 함의가 제일 중요하게 다가왔다. 이런 반복된 공시가 기관이나 외국인이 아닌 개인에게 피해를 가장 많이 전가했다는 점에서 저희에겐 중요 사례였다.”(김 기자)
시리즈 총 6개 기사는 경제·금융 전문 매체에서 통상 내놓는 콘텐츠보다 일반 독자에게 문제의식을 환기하기 수월한 사안이었고, 실제 조회수도 잘 나온 편이었다. 내부에선 최근 데이터 기반 기사 중 ‘가장 사회적으로 의미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데이터 정리와 분석으로 김 기자가 구축한 뼈대에 박 기자가 공시 당시 기업들의 주요 이슈·히스토리를 꼼꼼히 살펴 살을 채웠다. 3~4년 전 취재일지를 뒤지고, 금융당국과 기업에 직접 접촉하는 과정이 수반된 끝에 데이터와 이야기가 씨줄날줄로 교차하며 일반 대중에 다가가기 쉬운 기사가 나왔다.
“그날 장에서 중요한 일, 업계 중요인사의 행보 등 단말기 베이스의 호흡이 짧은 기사를 많이 쓰는데 이번 기획에선 예전 일부터 쭉 흐름을 봐서 색달랐다. 조회공시 기사는 전문 투자자 등은 다 아는 얘기라 그들이 볼 내용으론 거리가 좀 있는데 ‘전달’에 고민을 하게 된 경험이기도 했다. 일반 투자자들이 늘고 성숙해져서 접점이 많이 늘었지만 저희한텐 아직 예전 문체가 남아있나란 생각도 해봤다.”(박 기자)
김경림 기자는 2014년, 박경은 기자는 2021년 연합인포맥스에 입사하며 언론계 생활을 시작했다. 김 기자는 증권부에 4~5년을 몸담았고 현재 기업금융부에서 삼성, LG, SK를 출입하며 빅데이터뉴스부를 겸업한다. 박 기자는 입사 후 기업금융부에서 일해 오다 4개월 전부터 증권(투자금융부) 쪽을 담당하고 있다. 전문 매체 기자로서 한 출입처를 오래 담당하는 분위기, 자체 금융정보 단말기 보유에서 비롯된 데이터 접근성, 특히 이를 전담하는 부서(콘텐츠본부)의 존재 및 기획에도 참여한 콘텐츠팀과 협업 여지 등이 보도가 가능했던 배경으로 꼽힌다.
기사를 통해 역할이 안 보이는 제도의 무용함이 화두로 던져졌다. 기업이 ‘미확정’ 공시를 하게 되는 자금조달 차질, 딜 무산, 주가의 요동 등 불가피한 사유와 별개로 현 제도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점은 명백하게 드러나서다. 박 기자는 “가장 좋은 해법은 꼭 공시가 아니더라도 기업이 투자자와 소통을 잘하는 것”이라며 “정기 IR행사에서 회사 이슈를 충분히 설명하거나 코로나 당시 온라인에서 투자자 설명회를 하며 일반 투자자도 청취할 수 있게 했던 태도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기자는 “20여만 건이란 숫자에 압도될 수 있지만 조금만 익숙해지고, 엔지니어와 소통만 잘 할 수 있으면 저 같은 ‘문송’도 하는 작업”이라며 “그래픽 담당자나 소프트웨어 등 부족한 게 많고 데이터저널리즘팀을 갖춘 매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자체 누적된 금융데이터, 내부 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문제의식에 대한 답을 데이터로 찾는 노력을 계속 해보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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