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올해 국제 이슈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여파가 큰 사건이 있다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겠지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동에서마저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서 세계는 시끄러웠고, 숱한 이들이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80억명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내다보지는 못한다 해도, 11월5일의 미국 대선을 비롯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선거 일정이나 기념하고 기록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볼 수는 있지요. 중요한 일정들을 통해 한 해를 얼추 그려볼까요.
방글라데시 총선 시작으로 줄줄이 선거
먼저 중요한 선거 스케줄이 있습니다. 아시아에 유독 큰 선거가 많습니다. 인구대국들이 줄줄이 선거를 치르는 까닭에, 내년에 한 표를 행사하는 지구 상의 유권자가 무려 42억명이라 합니다. 가장 먼저 새해 첫 달 7일에 방글라데시에서 총선이 실시됩니다. 집권 아와미연맹의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건국 주역의 딸인 2세 정치인으로서 1990년대 한 차례 총리를 지냈고 2009년부터 다시 집권해 지금까지 19년째 집권하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 앞두고 폭력사태가 자꾸 일어나는 모양인데, 말 많고 탈 많은 하시나 총리가 다시 집권을 연장할지 관심을 끕니다.
1월13일에는 대만 선거가 있습니다. 총통과 부총통, 그리고 의회인 입법원 위원들을 뽑는 선거가 같이 치러집니다. 국민당과 민진당이 박빙인 모양인데 선거 결과에 따라 양안 관계, 미중 관계 등 여러 측면에 파장이 일겠지요.
2월8일에는 파키스탄 총선이 있고 이어 14일에는 인도네시아 대선이 실시됩니다. 5년 임기의 정부통령을 뽑는데, 인도네시아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후보를 낼 수 있는 정당의 제한 조건이 있어요. 하원 격인 데완에서 의석 20% 이상을 갖고 있거나, 또는 이전 총선에서 전국 투표의 최소 25%를 가진 정당이나 정당 연합이 후보를 낼 수 있습니다.
50% 득표자가 없으면 결선투표로 가는데, 2004년 이후 결선 없이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이 2연임씩을 했지요.
여전히 80%대 지지율을 누리고 있는 조코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납니다. 헌법상 재출마가 불가능합니다. 조코위의 라이벌이었으나 국방장관에 임명되면서 파트너로 변한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수하르토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인물입니다. 조코위 대통령이 정적을 내각에 끌어안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프라보워가 조코위의 아들을 편법까지 써가며 러닝메이트로 삼고 다음 대선에 나온다는군요. 1990년대 후반 수하르토 정권이 축출된 후 숱한 어려움을 넘기며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온 인도네시아인데, 그 수혜자이자 상징적인 인물인 조코위가 아들을 슬그머니 부통령으로 들이밀었다 해서 말이 많습니다.
인도네시아 대선 결선투표 갈 듯
프라보워의 경쟁자는 간자르 프라노워 중부자바 주지사인데, 각축전 끝에 이번에는 결선투표까지 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누가 되든 외교관계에는 큰 변화는 없을 듯하지만, 막강한 국내 지지도를 바탕으로 외교에서도 광폭 행보를 보여온 조코위만큼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참, 인도네시아는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누산타라로 옮기는 중요한 일도 앞두고 있습니다. 8월17일에 전통적인 권력 중심 자바가 아닌 칼리만탄(보르네오 섬)으로 행정수도를 옮깁니다.
벌써 집권 10년이 된 사람, 또 있습니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말입니다. 4~5월 인도도 총선을 치릅니다. 6월에는 스리랑카 대선이 있고요.
선거가 잇달아 잡혀 있다지만 아시아의 민주주의에는 먹구름이 가시질 않습니다. 2월1일이면 미얀마 쿠데타가 일어난 지 3년이 됩니다. 태국은 5월이면 군사쿠데타 이후 벌써 10년이 되고요. 내년엔 좀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까요? 현재로선 회의적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4월 말 ‘레이와 시대 5년’을 맞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취임한 지 3년째에 접어드는데 요즘 지지율이 바닥인 모양이죠. 북한 동향은 어떨까요. 2월 말이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5년이 되네요. 7월엔 김일성 사망 30년이고요. 남북 모두 위협은 줄이고 제발 다시 대화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3월엔 러시아·우크라이나 대선
유럽으로 옮겨가볼게요. 러시아(3월17일)와 우크라이나(3월31일)가 모두 대선을 치릅니다. 우크라이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2004년의 오렌지혁명, 10년 지나 2014년의 존엄 혁명(마이단 혁명),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나 이번엔 전쟁 중에 새 지도자를 뽑게 되는군요. 러시아에선 뭐 블라디미르 푸틴이 다시 대통령이 되겠지요. 어디든 분란이 없는 게 제일 좋지만 러시아에선 변화의 조짐이 일 법도 한데 말입니다.
독일의 첫 여성 국방장관을 지내고 유럽연합의 첫 여성 수장이 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체제가 어느새 5년이 됐네요. 6월6일 유럽의회 선거가 열리는데 우크라이나 전쟁과 각국의 우경화 분위기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합니다.
올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내년 중남미 정치일정은 상대적으로 덜 바빠 보입니다. 6월2일에는 멕시코 대통령이 새로 선출됩니다. 멕시코시티 시장을 지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멕시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에 시선이 쏠립니다. 10월에는 베네수엘라 대선이 있습니다. 미국의 압박과 경제난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또 나오나 봅니다. 주요 야권 후보들은 출마를 금지시켜 비판이 많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하고 시선이 쏠리는 것은 미국 대선이겠지요. 그런데 신선함이라곤 1도 없습니다. 바이든 대 트럼프. 이 구도를 또 보게 되다니 말입니다. 앞으로 열 한 달 동안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어쩐지 막장 드라마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중동과 아프리카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지요. 중국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대표들의 손을 붙잡고 ‘관계 정상화’ 중재를 한 게 올해 3월10일이었는데, 내년엔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까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중동의 모든 이슈를 덮어버린 꼴이라 시계가 너무 흐립니다. 대선을 앞둔 미국 바이든 정부가 이란과의 관계에 변화를 좀 이끌어내려고 할지 모르겠네요.
1994년 아프리카에서는 두 가지 커다란 일이 있었습니다. 르완다에서는 내전과 제노사이드라는 참담한 사건이 벌어진 반면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인종차별에 맞선 오랜 투쟁 끝에 넬슨 만델라의 흑인정권이 탄생했습니다. 그 후 30년, 남아공에서는 ‘만델라의 후계자들’이 계속 집권하고 있으나 경제, 사회적인 문제들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죠. 르완다는 어땠을까요. 내전을 끝낸 ‘동아프리카의 빅맨’ 폴 카가메 대통령의 1인 체제 하에서 안정을 누리며 나름 성장해왔지만 장기집권 체제가 점점 억압적으로 변해간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7월15일에 대선이 실시되는데 카가메가 또 출마합니다. 2003년, 2010년, 2017년 대선에서 모두 카가메 득표율이 90%대였습니다. 여성의 정치참여, 내전 이후 보복 금지와 정치안정 등 카가메 정부가 거둔 여러 성과들이 있지만 이쯤 되면 모두 빛이 바래지 않을까요.
회원국 늘어난 ‘브릭스’ 목소리 커질까
내년에는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가 브릭스에 가입합니다. 2000년대 중반,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의 위상이 떨어졌을 때 브릭스 위상이 대단했는데 그 뒤로는 존재감이 별로 없었죠. 브라질 ‘룰라의 귀환’과 함께 브릭스가 다시 목소리를 키우려 하고 있는데, 회원국이 대거 늘어난 이 모임이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요. 룰라 1기 시절엔 그래도 ‘글로벌 사우스’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전쟁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 비민주적 왕정 국가들의 모임이 돼버리는군요.
6월엔 축구팬들이 기다리는 유로2024 경기가 독일에서 열리고 이어 프랑스 파리에서 하계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블라디미르 레닌(1월21일)과 프란츠 카프카(6월3일)가 사망한 지 100주년이 됩니다. 월드와이드웹이 탄생한 지 30년(10월1일)이 되고 페이스북이 창립된 지도 20년(2월4일)이 됩니다. 11월에는 1972년 이래 첫 유인 저궤도 탐사선이라는 아르테미스2호가 론칭될 예정이랍니다. 내년 이맘때 한 해를 돌아볼 때에는, 올해보다는 밝고 따뜻한 일들을 많이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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