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이나 생일 등 기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면 전주 객사 맞은편 골목에 있는 진미반점을 찾았다. 안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기름 냄새를 맡고, 사장님의 중국어 주문이 들리면 마음이 들떴다. 짜장, 짬뽕, 볶음밥 등 식사류만 먹고 가면 섭섭하다. 그럴 땐 부모에게 한껏 부족하지 않겠냐는 눈빛을 보낸다. 애써 무시하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은 통했다. “덴뿌라(고기튀김) 중짜 하나 주세요”라는 말이 나와야 안심했다.
길게 자른 돼지고기가 튀김옷을 걸친 채 넓은 접시 위를 뒹굴고, 밥그릇 크기의 작은 접시에는 묽은 소스가 담겨 나온다. 튀김 사이로 듬성듬성 바닥이 보여 휑해 보인다. 간장 종지에 고춧가루를 개고, 후추를 뿌린 소금을 부탁하면 먹을 준비는 끝이다. 우리 테이블에 올라온 고기튀김을 보고 옆 테이블에서는 탕수육과 무슨 차이냐 묻는다.
처음은 아무것도 찍지 않고 곧장 입으로 향한다. 방금 주방을 나온 튀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쾌한 파열음이 즐겁다. 입천장을 조심하며 살살 씹어본다. 기름의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감돈다. 튀김옷 아래서 육향과 후추향이 치고 들어온다. 싱거울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반죽과 고기 사이에 오묘하게 스며든 소금간을 천천히 즐긴다. 거기에 후추 섞인 소금을 살짝 찍어 간을 더해보자. 반죽과 고기, 기름과 소금으로 자아낸 단순한 맛이지만 자꾸 젓가락을 부른다. 새콤한 탕수육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다.
고기튀김은 단순해서 더 어려운 음식이다. 좋은 고기를 쓰지 않으면 잡내가 나거나 퍼석거린다. 깨끗한 기름을 쓰지 않으면 탄 맛이 나거나 거무튀튀한 튀김이 나온다. 그래서 중식집 실력을 알려면 고기튀김을 맛보라는 말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집 실력의 척도다. 오래전부터 입증해 온 실력 덕분에 진미반점은 20, 30년 넘게 찾는 손님이 많다.
식사로는 제철인 굴을 잔뜩 넣은 빨간 굴짬뽕, 담박한 간짜장, 된장을 전분물에 풀어 걸쭉하게 만든 물짜장도 권하고 싶다. 전날 과음으로 해장이 필요하다면 닭과 청양고추로 칼칼하게 국물을 낸 기스면도 좋다.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내용: 본인이 추천하는 맛집에 대한 내용을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으로 기술.
▲접수: 이메일 taste@journalist.or.kr(기자 본인 소속·연락처, 소개할 음식 사진 1장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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