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 수를 크게 늘리고 사장 추천에 시민이 참여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지배구조 개편이 공영방송 개혁의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3일 ‘공영방송의 구조와 제도의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방송기자연합회와 자유언론실천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이 같은 의견에 대체로 뜻을 같이했다.
발제를 맡은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공영방송은 지배구조뿐 아니라 경영과 예산, 제작 세 가지 부분에서 모두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이 이번에 만든 법이 문재인 정부 때 통과됐더라도 지금과 같은 (방송장악) 사태가 있었을 것”이라며 “중간중간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임의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야당 단독 표결로 통과한 방송3법 개정안은 9명에서 11명인 KBS와 MBC, EBS의 이사를 여야만 추천할 것이 아니라, 국회 추천 몫은 5명으로 줄이고 방송·미디어 학회와 직능단체가 6명씩, 각 방송사의 시청자위원회가 4명을 추천해 각각 모두 21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정치권의 입김을 줄이려는 시도다.
하지만 홍종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BK교수는 “정치권력이든 시민사회든 공영방송을 길들이려는 욕망이 있다”며 “이를 시스템적으로 제어하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할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홍 교수는 이런 내용을 담아 지난달 ‘KBS 죽이기’를 공저로 펴내기도 했다.
허찬행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영방송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으니, 수신료도 지위가 불안정하다고 짚었다. 허 교수는 “방송법을 만들 당시 권위주의 체제에서 법 제정 목표가 공영성이 아니라 재원 충당일 뿐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방송법에는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가 없다. 공직선거법과 공항소음방지법에만 ‘공영방송사’와 ‘공영방송 수신료’가 언급돼 있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고 그 재원인 수신료를 보장할 필요성이 법 차원에서 충분히 규정되지 못한 셈이다.
언론학 박사로 연구자이기도 한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홍보실장도 “2017년 방송법이 통과됐더라도 지배구조만 건드리는 내용이었으니 지금처럼 (시행령 개정으로) 수신료 분리 고지를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방송 관련법 개정을 주장했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몇 개월 되지 않아 입장을 바꿨다. 당시 법안은 여야 추천 이사 수를 비슷하게 맞추고 공영방송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해임하려 할 때 이사의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해, 사실상 야당의 동의를 구하도록 한 내용이었다.
김 실장은 또 “방송법이 규정해 놓은 편성규약도 강제성을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방송법은 방송사업자가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제작자 독립을 지키기 위한 편성규약이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와 사측이 편성규약을 어기면 어떻게 제재할 수 있는지 규정은 없다.
토론자로 참석한 정연욱 KBS 기자는 “2016년 백남기 농민 사건 때 기사에 ‘물대포’ 대신 ‘물줄기’로 써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왔는데 이번에는 ‘한중일’ 대신 ‘한일중’, ‘북미’가 아니라 ‘미북’으로 쓰라는 편집회의 공지가 나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