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앵커 교체·시사프로 폐지, 그렇게도 급한 일이었나
[보도본부 구성원들 "뉴스 사유화"]
일방적 '불공정 편파보도' 낙인까지
기자들 "정파적이란 근거·기준 대라"
KBS본부, 방송법 위반 혐의로 고발
“새 수뇌부가 시작부터 너무 선을 넘는다” “9시 뉴스는 사장의 스케치북이 아니다” “사장 취임 첫 주가 다 지나지 않았는데 회사는 전에 없는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박민 사장이 취임하고 약 일주일이 지난 현재, KBS 내부는 새 사장과 간부들에 대한 구성원의 질타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급기야 박 사장은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방송법 제4조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 피고발인 신세가 됐다.
‘혼란’ ‘점령’. KBS 구성원이 지금껏 나온 여러 성명에 이런 표현을 쓰는 건 사장 임명 직후부터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 때문이다. 임명장을 받지 않은 본부장 내정자들 지시로 메인뉴스 앵커를 비롯해 주요 뉴스·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고별인사도 없이 물러나고, 제작진들과의 협의 없이 시사 프로그램이 당일 결방되고 폐지된 일. 그리고 사장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불공정 편파보도”라며 콕 집어낸 보도 4건이 보도국 구성원 협의나 검증, 반론도 없이 당일 ‘뉴스9’ 앵커브리핑에서 그대로 열거된 사례. 모두 박 사장 취임 이틀 만에 벌어진 일들이다.
우선 지난 14일 방송된 뉴스9 앵커리포트에 대해 “사장의 뉴스 개입, 뉴스 사유화”라는 보도본부 구성원의 반발이 나온다. 이날 박장범 뉴스9 앵커는 <보도 공정성 훼손 대표적인 사례들은?> 앵커브리핑에서 “정치적 중립이 의심되고 사실 확인의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지 않는 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시청자들께 약속하겠다”며 박 사장이 “불공정 편파 보도”로 꼽은 보도 4건을 열거했다. KBS기자협회가 방송 전 ‘해당 기사에 오류나 문제점이 있는지 일체 확인 절차가 없다는 점’ 등의 기자들 우려를 전달했지만 무시됐다.
그러자 다음날 KBS 38기 기자들은 연명 성명을 내어 “과연 어떤 부분이 정파적이었고 그 근거는 무엇이며 판단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묻고 싶다.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라면, 새로운 수뇌부가 보도본부 구성원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KBS기자협회는 앵커브리핑 관련한 기자들 비판 의견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기자가 정파적 이익을 위해 고의로 오보 냈다’는 여권의 주장을 우리 회사가 인정하는 건데, 아무리 간부들이 교체됐어도 자사 기자를 이런 식으로 매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등의 우려가 담겼다. 지난 16일 KBS기자협회는 “뉴스9 시작 불과 몇 시간을 앞두고 큐시트에 등장한 4분여의 보도는 심지어 누가 썼는지도 모른다. 업무 프로세스와 관행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며 보도본부 책임자들의 설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일방 하차 통보, 프로그램 결방·폐지 사태를 일으킨 라디오센터장, 편성본부장 등 간부들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주진우라이브’ ‘최강시사’ 진행자 하차와 대체 프로그램 편성을 지시한 라디오센터장에 대해 KBS PD협회 라디오구역 PD 76명은 “동료와 후배들에 대한 일말의 예의와 상식조차 포기한 김병진 센터장은 이미 라디오 조직 수장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며 “권한 없는 무자격 신분으로 업무 지시를 했을 뿐 아니라 모든 절차를 무시한 채 프로그램을 바꿈으로써 KBS 방송 편성규약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질타했다.
프로그램 방영 당일 편성 취소 통보에 이어 프로그램 폐지 결정을 받은 ‘더 라이브’ 제작진은 지난 17일 성명을 발표해 “편성본부장은 작금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 편성본부장이 편성규약도 위반하는 것을 막지 못한 주변의 국장들도 함께 자리를 정리하라”고 촉구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사장 취임 이후 일어난 이런 일들이 모두 방송법, 편성규약, 단체협약 등을 위반한 사안이라고 보고 있다. KBS본부는 21일 박민 사장 등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고발과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KBS의 혼란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본부장·부장 인사에 이어 팀장급까지 인사 발령이 났지만, 임명동의제가 필요한 5개 국장(통합뉴스룸 국장, 시사제작국장, 시사교양1·2국장, 라디오제작국장) 자리는 공석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지난 20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내년 3월 단협 종료까지 사측이 아예 이 자체를 공석으로 계속 가지고 가는 등의 임명동의제 무력화 시도들이 나올 거라고 보고 있다”며 “공정방송 실천을 위해선 임명동의제가 언론사 종사자들에게 중요한 근로 조건이라는 게 이미 판시로 나와 있기 때문에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면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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