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134) 이사와 새해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조수정(뉴시스), 최주연(한국일보), 구윤성(뉴스1), 정운철(매일신문), 김애리(광주매일)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재개발을 앞둔 ‘한남뉴타운’이 세입자들의 이사 시즌을 맞이했다. 서른 살 직장인 은강도 2년 전 전세로 얻은 4000만원짜리 투룸을 비웠다. 이제 빌라에 남은 세입자는 204호 옆집 할머니뿐. 분주한 소리에 복도로 나온 할머니는 정이 든 젊은 이웃의 손을 붙들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인사를 한다. “잘 살아.”


이사는 공간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분절한다.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결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건마다 추억이 떠올라 끝내 버리는 데 실패한 주말 청소와는 다르다. 덕분에 이사를 마치고 난 뒤 우리의 삶은 한층 단정해진다.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기 좋은 계기다.


은강은 이웃들과의 관계, 열심히 만든 싱크대 하부장, 미니 세탁기, 이웃들과의 추억은 놔두고 가기로 했다. 대신 전자 키보드, 헌책방에서 구매한 옛 녹색평론들, 새로운 애인이 준 편지를 챙겼다. 곧 새해가 다가온다. 2023년에서 2024년으로 이사하는 지금, 짜장면을 입안으로 밀어넣으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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