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차 논쟁'이라는 징후

[이슈 인사이드 | 젠더]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

남초 커뮤니티의 생떼가 이번엔 ‘유아차’라는 단어로 옮겨붙었다. 한 유튜브 채널 출연진이 ‘유모차’라 말한 것을 성중립 단어인 ‘유아차’라 자막을 붙인 것이 화근이었다. 남초 커뮤니티 누리꾼은 “과한 페미니즘 검열”이라며 영상에 악플을 퍼붓고,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조롱 섞인 문의 글을 도배했다. 2년 전 GS25 포스터 그림이 한국 남성을 모욕한다며 사과문을 받아낸 것과 꼭 같은 양상이다.


일찌감치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된 유럽과 미국도 겪은 일이다. 영국인 작가 로라 베이츠는 어린 남학생들이 어느 날부터 똑같은 단어와 날조된 근거를 인용하며 여성혐오 주장을 펼치는 기저에 ‘매노스피어’라 불리는 남초 커뮤니티가 있음을 알게 됐다. 1년 동안 남초 커뮤니티에 잠입하여 온라인 여성혐오가 어떻게 현실 속 폭력으로 발전하는지 파헤친 책 ‘인셀 테러’는 최근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분석에 따르면, 매노스피어는 경쟁력이 없어 여성과 교제를 하지 못하는 ‘인셀(incel·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의 집합소다. 인셀은 여성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한데, 적대감을 밈과 유머의 형태로 향유하고 확산한다. 모든 남성의 고통의 근원에 ‘여성해방’이 있다며, 여성의 자유와 독립성을 박탈하고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지지한다. 이곳에서 여성혐오는 공기처럼 존재하고, 정치적 올바름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진짜 피해자는 ‘가부장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남성이다.


그저 방구석에 처박힌 ‘일부 패배자’의 지질한 짓 아니냐고? 미국에서는 강간과 아동 성착취 콘텐츠가 난립하던 인셀 커뮤니티 운영자가 젊은 회계사이자 전직 버지니아 의원 후보로 밝혀진 일도 있다.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는 ‘시시껄렁한 장난’ 아니냐고? 2014년 22세 엘리엇 로저는 범행 직전 유튜브에 여성을 단죄하겠다는 영상을 올린 뒤, 대학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을 향해 총을 쏴 총 6명을 살해했다. 그는 인셀들의 우상이 됐고, 숱한 모방 범죄가 잇따랐다.


최근 한국에서도 온라인 여성혐오가 현실 속 폭력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여름 한 26세 남성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성 20명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써 재판에 넘겨졌는데, 그는 이전부터 “한녀(한국 여성)들 죄다 묶어놓고 죽이고 싶다”는 식의 여성혐오 글을 1700여 건 작성했다고 한다. 지난 4일 경남 진주시의 한 편의점에서 20대 남성은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며 숏컷을 한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폭행했다. 남성연대는 남초 커뮤니티 중 하나다.


“미디어는 논란과 낚시성 클릭 체제 속에서 혐오를 팔아먹고사는 자들의 메시지를 증폭하고 퍼뜨림으로써 유해한 온라인 혐오가 오프라인에서 활개를 칠 중요한 통로를 제공했다. 혐오 발언에 ‘균형 잡힌 토론’의 한쪽이라는 프레임을 씌움으로써 극단적이고 용납 불가능하다고 여겨야 하는 주장을 정상적인 발언으로 취급하고 합리화해왔다.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적인 공격의 극단주의적 성격을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우리가 여성혐오 테러리즘의 진상을 파악하고 맞서기 힘들게 만들었다.”


미디어를 향한 베이츠의 일갈이다. 한국 언론도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페이지뷰를 위해 논란을 부추기며 페미니즘을 폄훼하고, 분명한 여성혐오 범죄를 ‘묻지 마 범죄’로 호명하여 본질을 희석시키고, 도태되어야 할 극단주의 커뮤니티 여론을 주류 공론장으로 옮기는 나팔수 같은 행동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유아차 논쟁은 언제든지 현실의 폭력이 될 수 있는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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