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을 언론사에서는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AI로 기사를 쓰는 대신 기자를 줄여도 될까? 뉴스룸 AI 기술 활용을 주도하는 AP통신의 대답은 ‘안 된다’에 가깝다. 뉴스룸에 도움을 줄 AI 기술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AI와 언론의 혁신’을 주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개최한 ‘2023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연사로 나선 AP통신의 어니스트 쿵 AI 프로덕트 매니저는 AI의 역할은 기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의 업무를 줄이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쿵 매니저는 “우리는 언론인으로서 AI의 한계도 명확히 알아야 한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저위험 AI와 고위험 AI를 구분해야 한다고 전제한 그는 상황에 따라 숫자만 바꿔 넣어주면 틀에 박힌 기사를 만드는 AI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면서 위험도도 낮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방식을 ‘자동화한 글쓰기’(Automated writing)라고 지칭했다.
반면 최근 창의적인 글쓰기 도구로 주목을 받은 챗GPT 등에 대해서는 “AP통신은 기사를 쓸 때는 생성형 AI를 쓰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몇 가지 정보와 힌트만 주면 정형화되지 않은 글을 써내는 생성형 AI는 오류가 많아 기사를 쓰기엔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올해 AP통신은 제목 정도를 제외하고 기사 본문과 이미지에 AI 사용을 금지한다고 업무 가이드라인인 스타일북을 새로 쓰기도 했다. 쿵 매니저는 수년 동안 AI 기술을 적용해 온 AP통신에서 AI가 기자를 대체하는 일은 없었다며 “단 한 명의 기자도 일자리를 잃지 않았다”고 두 번 강조해 말했다.
대신 쿵 매니저는 2021년부터 AP통신이 2년 동안 진행한 ‘지역 뉴스 AI 이니셔티브’를 뉴스룸에서의 AI 활용 사례로 제시했다. AP통신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지역 언론사 5곳에 맞춤형 AI 도구를 만들어줬다. 개발은 저널리즘 기술 발전을 위해 후원하는 나이트재단의 도움을 받아 이뤄졌다.
신문사 ‘브레이너드 디스패치’에는 이메일로 들어오는 지역 경찰의 일일 활동 보고서를 AI가 요약 정리해서 기사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미리 정해둔 기사 틀에 새로운 정보만 바꿔 넣는 형식이다. 하루에 세 시간씩 고정적으로 써야 하는 노동력을 아껴 기자들은 깊은 보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느 지역에 어떤 범죄가 많은지 데이터베이스를 매일 자동으로 쌓아 주는 시스템까지 만들려 했지만 여기까지 해내지는 못했다.
‘엘 보세로’ 신문사에도 자동 기사 작성 시스템을 만들었다. 국립허리케인센터에 기상 정보가 뜨는 즉시 스페인어로 번역한 뒤 미리 갖춰둔 기사 틀에 맞춰 기사화했다. 두 신문사 경우 모두 저위험 AI를 쓴 것이다. 어니스트 쿵 매니저는 “생명을 구할 경보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정확해야 했다”며 “생성형 AI를 적용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KSAT-TV’도 취재 노동을 크게 아꼈다. 기자 회견 내용을 일일이 받아치는 일을 AI가 대신해 요약까지 한 뒤, 언론사 내부망에 올려주면 기자들이 활용하는 방식이다. ‘미시간 라디오’도 시의회 회의 속기록을 AI가 만들도록 했다. 한 발 나아가 미리 정한 주요 키워드가 회의 때 언급되면 AI가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알려주게 했다.
머신러닝을 이용하기도 했다. ‘WFMZ-TV’에서는 AI에게 이메일로 들어오는 보도자료의 중요도를 구분하게 했다. 쿵 매니저는 “분류 기준을 학습시켜야 해 처음 몇 주는 업무가 크게 늘었다”며 이후에는 목표한 대로 모든 메일을 열어볼 필요가 없어져 업무량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영세한 언론이 많은 한국은 이런 AI 기술을 어떻게 도입해야 할지 묻는 참석자 질문에 어니스트 쿵은 “여러 차례 들은 질문”이라며 “뉴스룸에 데이터 과학자가 필요하지만 테크 회사에서 더 많은 연봉을 받을 텐데 인력을 구하는 일부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언론이 협력하는 협회가 있다면 가능할 것”이라며 “단합해야 펀드를 끌어모을 수 있다. AI 도구를 혼자 만들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쿵 매니저는 한국이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전 세계가 보고 배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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