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기자들 "사내 성비위 가해자를 요직에?"

[169명 기명 성명, 노사 갈등 최고조]
기자들 "가해자 비호에 의욕 꺾여… 성기홍 사장, 왜 그렇게 감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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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1. 연합뉴스 주요 보직부장인 A 기자는 올해 초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로 신고됐다. 사규에 따르면 노사는 4대4로 ‘성희롱 및 괴롭힘 대책 특별위원회’(특위)를 구성해 조사를 진행해야 했지만, 특위는 가동되지 않았고 공식 조사도 없었다. 이후 지난 9월 A 부장에 대한 두 번째 신고가 들어왔다.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리던 피해자가 조사에 참여하기로 결단해준 덕분”이었다. 공식 조사가 이뤄졌고, 특위는 해당 사안이 “첫 번째 신고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인식, 정식 조사와 징계가 없었다는 점에 동의”하고 노사 합의로 노무법인에 조사를 의뢰했다. 노무법인은 “정상 참작 요인과 가중 요인 모두 반영해” 인사위원회에 “적정선 이상의 징계”를 제언했다. 하지만 징계는 없었다. 대신 지난 9월 정기 인사에서 A 부장은 주요 보직부장을 맡았다. 사장과 인사위의 “상식 밖 결정”에 연합뉴스 노조는 재심을 청구했지만, 사측 위원 전체 반대로 부결됐다.


#2. 지난달 초 연합뉴스에선 또 다른 사내 성 비위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엔 “부적절한 언행으로 여러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 편집국 B 간부가 가해자로 지목됐다. 징계 여부와 수위가 결정되기 전인데도, 사측은 B 간부에게 대기발령이 아닌, 부서이동 조치를 취했다. 상식적인 인사라면 “성범죄 등 중대한 비위행위로 징계 의결이 예정된 자는 대기발령이 원칙”이다.


지난달 26일부터 이어진 연합뉴스 노조 성명과 연합뉴스 기자 단체 성명, 성기홍 사장의 간부회의 발언 등을 종합해 정리한 최근 연합뉴스에서 벌어진 사내 성비위 관련 사태들이다.


직장 내 성폭력 가해자로 신고된 A 부장, B 간부에 대한 사측의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 조치에 연합뉴스 구성원의 비판이 거세다. 특히 지난달 30일 연합뉴스 사원급 기자 155명이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징계와 개선책 제시 등을 요구하는 기명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구성원들은 해당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성기홍 사장은 성명이 나온 다음날 간부회의에서 관련 입장을 냈지만 A 부장 인사에 대해선 강행 의지를 내비쳐 추가로 기자 14명 기명 성명과 노조 성명이 나오는 등 내부 반발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연합뉴스 기자들은 사내 성비위 사태로 인해 취재현장에서 근로 의욕이 크게 꺾인다고 토로한다. 주니어 연차 C 기자는 “무엇보다 취재원들 보기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타사의 성추행, 성희롱 사건 기사를 쓰지 않나. 이제는 이걸 써도 되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취재원들이 연합뉴스 사안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창피한 건 저희 몫이 돼버렸다”고 덧붙였다.


기자들은 “가해자를 감싸고 2차 가해를 방조하는 회사의 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이번 사태들이 “회사 안에서 잊을만하면 되풀이됐으나, 매번 덮고 지나왔던 여러 사건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인식한다. 기자들이 이름을 걸고 성명을 낸 것도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오히려 주요 보직에 오르거나 가해를 저질러도 용인되는 조직에 대한 구성원의 분노가 쌓인 결과다.


연합뉴스 노조와 기자 기명 성명에 대한 성기홍 사장의 입장을 두고도 구성원의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성 사장은 지난달 31일 간부회의에서 A 부장에 대해 “9월 초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시 문제제기가 이뤄져 절차와 규정에 따라 조사가 진행됐지만 일사부재리 원칙에 해당되지 않을 새로운 문제나 재발 사안이 없는 것으로 조사돼 올해 초와 동일한 조치(상급자의 엄중경고)로 주의를 환기시켰다”고 말했다.


주니어 연차 D 기자는 “보직부장(A 부장) 사안이 또 다른 성희롱 가해자 (B 간부)보다 더 심각하다는 게 구성원들의 시각”이라면서 “그럼에도 왜 이렇게까지 사장은 해당 부장을 최선을 다해 감싸는지 의문이 든다. 현 정권 인사와 가까워 그런 건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존하는 피해자가 있는데,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는 징계 없이 놔둔 채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공허한 얘기를 했다는 것도 기자들이 분개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성 사장이 언급한 ‘일사부재리 원칙’ 부분이 사실관계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는 지난 6일 2차 성명에서 “(A 부장) 첫 신고 당시는 공식 조사 자체가 없었고 두 번째 신고 때는 공식 조사가 이뤄져 노사 합의로 선임한 중립적인 노무법인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적정선 이상의 징계를 제언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사장은 뚜렷한 설명 없이 징계 제언을 무시했다.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의 가슴에 못을 박은 셈”이라며 “일사부재리를 이 사안에 거론하는 것은 단어 뜻을 모르거나 상황을 오도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지난 1일 연합뉴스 기자 14명의 기명 성명에선 “사장이 스스로 ‘엄중 경고’ 했다고 언급한 사람을 요직에 기용한 건 자기모순이다. 사장이 임기를 보장받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라는 지적이 나왔다.


연합뉴스 관계자는 지난 6일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노조, 기자들의 추가 성명에 대해 “아직 회사 쪽 입장이 나올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구성원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A 부장 인사가 그대로 유지되는 건지 묻자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고 그것에 대해 논의된 건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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