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그이가 참 좋아했을 텐데….” 올 5월 광주를 찾았을 때 한귀분(86)씨는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듯했습니다. ‘그이’는 우키시마호 생존자 고 장영도(90)씨. 안타깝게도 취재진이 방문하기 넉 달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평생을 어머니, 누이의 유해를 찾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 했지만, 결국 간절한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서둘렀다면, 더 편안하게 눈을 감지 않으셨을까….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우키시마호 역사는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강제징용에 끌려간 수많은 한국인이 귀향 도중 의문의 폭침으로 수장됐지만, 이를 기록하고 규명하는 일은 뒤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유해는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일본 땅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참혹했던 ‘그날’은 한국사 교과서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고, 역사·추모공간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날을 기억하는 생존자는 고령으로 하나둘 세상을 등졌습니다.
다행히 역사의 마지막 끈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전국에 뿔뿔이 흩어졌던 생존자와 유족을 수소문 끝에 찾아 놓쳐버린 기록을 다시 써 내려갔습니다. 공동 기획한 ‘서일본신문’을 통해 일본에 남은 중요한 사료와 현지 주민의 증언도 확보했습니다.
우키시마호는 이제 마지막 항해를 시작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유해 봉환이 재추진되고, 부산에서는 역사·추모공원 조성에 대한 논의가 달아오릅니다. 무엇보다 ‘메아리 없는 호소’에 지칠 대로 지쳤던 생존자, 유족들이 다시 힘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역사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모두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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