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생 동갑인 스포츠경향 김만석 편집부 선임기자와 조진호 생활경제부장은 지난 5일 오전 8시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서 만났다. 석 달 전 같이 밥을 먹다가 “걸어서 춘천까지 가볼까?”란 말이 툭 튀어나왔고 ‘디데이’가 된 것이었다. 오래 동기처럼 지낸 두 기자가 ‘요즘 심심한데 재미난 일 없나’ 같은 대화를 하다가 ‘약속’이 된 무작정 도보 여행. 1박2일 간 경기도 남양주에서 강원도 춘천까지 걸어간 두 중년 기자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60여km, 대략 ‘150리’ 길. 이제 정년퇴직을 4~5년 앞둔 중년에겐 부담이 될 거리였다. 김 선임기자는 지난 12일 통화에서 “‘농반진반’으로 시작했는데 날짜가 다가올수록 겁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그러더라. 체력이나 인내심 한계를 도전해보자 했다. 둘만 알면 계획이 빠그라질까봐 동료들에게 알려 취소를 원천봉쇄했다”고 말했다. 조 부장은 “고향인 춘천까지 언젠가 걸어서 가봐야지 했는데 혼자보단 둘이 낫겠다 싶었다. ‘춘천닭갈비는 내가 살게’ 하다가 그냥 가게 됐다”고 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백팩 하나 덜렁 메고 출발했다. 짐도 계획도 없었던 여정의 시작은 의외로 수월했다. 평일에 나온 터 자전거 운행이 적어 신경 쓸 일이 적었고, 완연한 가을 날씨도 등을 저절로 떠밀었다. 사람 없는 길에서 ‘7080’ 노래와 라디오를 틀어 듣고, 힘껏 따라 부르고, ‘퇴직도 4~5년 남았는데 뭐 할거냐’ 같은 아무 얘기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게 좋았지만 출발지에서 약 21km 거리인 대성리에 이르러선 한계가 오기도 했다. 이날 남이섬 쪽에 급히 숙소를 예약하고 오후 6시쯤 도착하기까지 총 31km. 짐을 풀고 나가 ‘닭갈비에 소주 한 잔’을 하고, 월풀 욕조에 몸을 담근 후 잠자리에 들었다.
김 선임기자는 “대성리에서 이미 한계였다. 더 이상 못 걷겠다 싶었는데 점심으로 순댓국 특을 먹었고 큰 도움이 됐다.(웃음) 다음부턴 그냥 저절로 가게 된 느낌”이라며 “한 달 전부터 걷기 연습을 하면서 퇴근길마다 6.5km씩 걸었는데, 군대도 경비교도대를 나온 저로선 이날 하루 최장으로 걸어본 거였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온몸이 아팠다.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가는 나를 조 부장이 잘 챙겨줘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오전 8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시 걸었다. 김밥을 사먹고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선인 경강대교를 지났고 백운리를 거쳤다. 이날 오후 3시 총 22km를 걸어 강촌역에서 여정을 마무리하기까지 ‘못 가겠다’ 싶을 때마다 풍경에 취해 그냥 걸었다. 특히 두 기자는 “가평에서 강촌 가는 길”을 최고의 ‘스팟’으로 꼽았다. “옆은 강이고, 이제 막 단풍이 시작되려 하는 산이 기억에 남는다. 백양리쯤에선 갈대가 우거져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치는데 사진도 많이 찍었다. 경기도와 달리 강원도에선 길에 벤치도 거의 안 보였는데 그건 그것대로 참 좋았다.”(조 부장)
내년 3월엔 사람을 모아 대관령 옛길에 도전할 예정이다. 각각 1993년, 1994년 다른 지역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두 기자는 굿데이신문에서 함께 일했고 경향신문에서도 인연이 이어지며 20년을 알아온 동료이자 친구 같은 사이다.
평소에도 걷기를 즐기는 둘은 이번 코스를 다른 기자들에게도 추천했다. 두 기자는 “기자 사회에 여러 힘든 일이 많은데 멋진 길을 걸으며 힐링하는 재충전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목표 없이 출발했다. 우리도 원래 춘천 시내까지 가려다가 무리라 생각해서 중간에 돌아왔다. 이 코스 장점은 가다 힘들면 언제든 중지하고 전철 타고 돌아오면 된다는 거다. 가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래도 되는 거니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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