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아시안게임이 20여일 여정 끝에 지난 8일 폐막했다.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준 시간은 이 소식을 신속정확하고, 생생히 전하려는 기자들에겐 ‘비상’인 기간이었다. 2008년 경력기자로 KBS에 입사해 월드컵, 올림픽 등 ‘빅 스포츠 이벤트’를 다수 경험한 김기범 KBS 기자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 지난달 16일 축구대표팀 조별리그 예선 취재를 위해 현지로 간 그는 10일 귀국까지 총 25일 간 축구와 대한체육회, 테니스, 역도 등을 취재했다. 지난 6일 본보와 통화에서 그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만 해도 경기장 외엔 아무 데도 못 가는 폐쇄루프였는데 엔데믹 이후 처음 열린 국제종합스포츠대회라 전반적으로 활기찬 느낌”이라고 했다.
오전, 눈을 뜨면 장비·공간이 마련된 국제방송센터(IBC)로 넘어가 취재사항을 정하거나 곧장 현장으로 간다. 주요일정에 돌입하는 오후부턴 맡은 종목을 본격 취재한다. 한국선수 성과가 좋을수록 취재는 늦게까지 이어지는 일정이 반복된다. 이번에 파견된 영상·취재기자는 지상파3사별 각 10~15명(중계진 제외)인데 이 공정을 거쳐 TV 뉴스가 나간다. 김 기자는 “폐쇄루프가 아니라지만 늘 그랬듯 여유 부릴 시간은 없다. 버거를 사먹거나 사무실로 배달되는 도시락을 까먹고 일하러 가기 바쁘다”고 했다.
일이 주는 특별한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감동의 현장, 선수들을 가까이 보는 특권(?)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e스포츠 ‘스트리트 파이터 V’에서 우승한 김관우 선수와 기자들의 믹스트존 인터뷰는 팬미팅 느낌이 났다. 30분을 대기했지만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통상 5분 남짓 인터뷰 시간도 신난 질문과 답변으로 30분 가량 이어졌다. 오락실 감성을 공유한 비슷한 세대의 공감대가 컸다. 개회식도 화제가 됐는데 김 기자는 “제겐 역대 2위”라고 평가했다. 그는 “여러 개막식을 봤지만 팝 컬처와 문화를 내세웠던 런던 올림픽 다음으로 좋았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 개인 폰으로 영상을 찍진 않는데 가상과 현실 경계를 허물고 디지털 거인이 불을 붙일 땐 녹화를 하게 되더라”고 했다.
김형래 SBS 기자는 그때 이름조차 낯선 비인기종목, 대회장 ‘밖’을 취재하고 있었다. 2018년 SBS에 입사한 사회부 기자는 TV가 아니라 뉴미디어채널 ‘비디어머그’용 디지털콘텐츠 제작을 맡으며 파견됐다. 총 15편을 만들며 ‘현장 브이로그’, ‘북한 선수단 찾아다니기’, ‘관중석 취재’ 등을 비롯해 e스포츠, 스케이트보드, 크라쉬, 수구, 여자하키, 브레이킹 등을 다뤘다. 서울에 있는 작가, 편집기자와 협의를 통해 취재 제반 사항을 정하고 낯선 종목의 룰을 벼락치기 공부한 후 영상기자와 출동하는 식이었다.
그는 “불확실성이 커서 어려웠다. 가기 전 정한 종목 경기장이 300km 밖인 일도 있었다”며 “디지털콘텐츠는 고정 틀이 없다보니 ‘내일 뭐하지’가 주요 고민이었다. 예전과 달리 과정이나 선수들 스토리에 감명받기 때문에 스토리를 찾으려 했는데 가보기 전엔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중계 여부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국대’ 선수들이 영상에 담겼다. 그는 “‘인터뷰 해본 적 있냐’는 공통 첫 질문을 했는데 다 ‘처음’이라 답했다. 가볍게 물었는데 인터뷰 후 선수들이 좋아하는 모습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며 “크라쉬란 종목을 몰랐는데 경기에서 온 힘을 쏟고 탈진한 이예주 선수가 주최 측 부축을 받아 나가던 게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현지에 안 갔지만 디지털부서도 아시안게임을 ‘비상 체제’로 겪은 곳이다. MBC 엠빅뉴스팀 남형석 기자는 개막 후 평소와 달리 계속 조별 근무로 일했다. 추석연휴 기간에도 이틀만 쉬며 팀 전원이 아시안게임 콘텐츠만 만들었다. 월드컵, 올림픽에 버금가는 행사란 측면에 더해 알고리즘과 조회수를 고려한 부서의 전략적 이유가 컸다. 남 기자는 지난 6일 “중계영상을 실시간 편집해, 아무리 늦어도 (경기 후) 5분 내로는 올려야 해서 긴장도가 높다. 먼저 올린 쪽과 차이가 너무 커서 자칫 성과 없는 고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야구와 축구, 여자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 결승이 있는 내일(7일) 같은 날은 대목이다. 기자와 PD, 그래퍼들까지 거의 비상대기를 할 듯 싶다”고 했다.
선수들이 만들어낸 순간을 많은 기자들이 이야기로 전한 시간이 지나갔다. 대회 전반 운영면에선 좋은 평가가 많았지만 국내 언론의 취재요청은 물론 선수 간 교류조차 거의 없었던 북한선수단 모습처럼 정치적 요인이 스포츠에서 드러난 풍경도 있었다.
황민국 경향신문 기자는 10일 북한 선수단을 분석한 기사에서 “‘동지’로 칭하는 중국을 제외하면 그 어떤 나라의 선수와도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같은 핏줄에 같은 말을 쓰는 한국 선수는 오히려 경계대상이었다”고 적으며 그럼에도 스포츠라서 가능한 순간을 꼽았다. 남북대결을 펼친 탁구 여자 복식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장면, 동메달을 딴 역도 김수현 선수가 북한 선수들의 웃음을 터뜨린 순간을 언급한 그는 “북한 선수들의 이런 모습이 모두 본심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만한 행동이 대회 후반부에 나왔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라며 지속 교류를 제안한 관계자 발언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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