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장 선임 절차가 파행하며 중단됐다. 사장 교체를 무리하게 속도 내며 ‘친정권 방송’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사장 교체를 둘러싼 졸속 진행은 사장 해임부터 후보자 공모·결선투표 등 곳곳에서 드러났다. 서기석 KBS 이사장은 김의철 사장 해임안을 2주 만에 재빠르게 처리한 뒤, 새 사장 후보 공모를 시작한 지 4일 만에 지원서를 받고 이틀 뒤 후보를 3명으로 압축했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결국 결선투표에서 탈이 났다. 이사회 여권 이사의 이탈로 사장으로 밀었던 후보의 과반 득표를 자신하지 못하자 사장 선임을 위한 향후 절차와 일정조차 정하지 못하고 멈췄다. 무능을 자인한 꼴이다. 이사장이 책임지고 사퇴하는 게 맞다.
KBS 내부에서는 이번 선거를 두고 ‘차악’을 뽑는 선거라는 냉소적인 자조가 팽배했다. 외부의 낙하산과 내부 인물 중 누가 되든 KBS의 혁신을 끌어내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수신료 분리징수와 KBS2TV 민영화 추진설 등 굵직한 현안을 풀어내기 쉽지 않은데, 구성원의 신뢰도 얻지 못한 인물이 사장이 돼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컸다. 졸속 절차로 뽑힌 사장으로는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없다는 분위기다. 김의철 전 사장이 법원에 낸 해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결과가 변수지만, 새 사장 선임이 절차대로 진행된다면 원점에서 재검토해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인물을 뽑는 게 그나마 잘못을 바로잡는 길이다.
따지고 보면 현 사태를 불러온 건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의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장과 KBS 이사장 교체를 시작으로 사장 물갈이를 통해 정권 입맛에 맞는 방송으로 재편하려는 데 근본원인이 있다. 그런데 방문진 이사장 교체는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고, KBS 사장 선출은 이사회 내부 여권 이사 이탈로 파행을 빚고 있다. 순리를 벗어난 밀어붙이기 해임이 빚은 참사다. 공영방송은 독립성과 공정성, 자율성 보장이 중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사장과 사장 교체를 통해 방송을 ‘친정부 전파’로 퇴행시킨 악습을 이제는 끊을 때다. 그러기 위해선 방송의 독립성이 절대적이다. 정권은 자기편을 드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조직을 쥐고 흔드는 유혹을 끊어야 하고, 방송사 내부에선 공정성을 침해하는 보도의 편파성을 감시할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불편부당한 방송은 정권의 폭압을 견디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은 어떤 식으로든 방송사 통제와 지배를 강화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KBS 사장 교체도 다시 수순을 밟을 것이고, YTN은 한전KDN과 한국마사회 지분 매각을 통해 정부에 우호적인 대주주를 찾을 것이다. 연합뉴스엔 정부구독료를 200억원 넘게 삭감하는 내년 예산안이 이미 편성돼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가짜뉴스 심의 전담 센터 추진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는 물론 언론 검열 논란에 휩싸여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가짜뉴스 근절을 내걸고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길들이기에 나서, 정부의 전방위적인 언론 통제가 점점 노골화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가짜뉴스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현실은 얼마든지 ‘이현령비현령’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에 밉보이면 가짜뉴스로 낙인찍을 개연성이 있다는 말이다. 심사 주체가 편파적이라면 누가 그 결과에 수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KBS 사장 선임절차의 파행적 모습은 정부의 무대포식 언론장악에 대한 경고다. ‘낙하산’ 사장을 앉히려고 계속 무리수를 둔다면 혼란은 가중될 뿐이다. 왜 같은 편도 설득하지 못했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장 선임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시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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