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사회 문제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언론 다시보기] 윤형중 LAB2050 대표

윤형중 LAB2050 대표

“현장에선 이게 문제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바뀌지 않다가 그 문제로 사람이 죽고 나면 화제가 되곤 합니다. 그때 지원이 늘어나고 체계가 조금씩 갖춰지죠. 그렇게 관심을 받는 기간도 짧습니다. 다시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반향이 없는 시기가 오죠. 그러다 다시 사람이 죽으면 조금씩 진전이 있어요. 얼마나 더 죽어야 하죠? 사람이 죽기 전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하지 않나요?”


2014년 4월 한겨레 기자로서 아동학대 사건을 취재하며 만난 정운선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인터뷰 답변이었다. 이 발언을 접하고 그날로 기자로서 평생의 출입처를 ‘구조적인 문제’로 삼았다(미디어오늘 칼럼 ‘부동산을 둘러싼 사망사건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사고만을 볼 게 아니라, 문제적인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조에 천착하겠다는 의지였다. 누군가 죽거나 고통받기 전에 문제를 공론화하고, 개선에 필요한 동력을 이끌어 내겠단 다짐이기도 했다. 이런 태도가 정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언론사를 그만둔 뒤론 정책 연구를 하고 있다.


문제는 정책을 다루면서도 거의 비슷한 문제에 봉착한다는 점이다. 사회 문제와 정책은 좀처럼 만나지 않는다. 어떤 문제가 공론화가 된 뒤에 잠시나마 정책 논의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그 기간이 길지 않다. 공론화가 되지 않아도 해법이 논의되고 정책이 만들어지면 좋겠으나, 그런 일은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문제는 공론화된 만큼 해법이 논의되고, 개선이 되곤 한다. 정책은 공론화와 숙의를 통해 현실과 정합성이 높아지고, 정교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론장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공론장은 어떤 상태일까. 세 가지 특징이 보인다. 첫째, 누군가의 잘못을 부각하거나 갈등적인 소재는 매우 빠르게 공론화된다. 둘째 특징은 아주 뜨겁다는 점이다. 뜨겁다는 의미는 여러 언론이 한 이슈에 집중하는 몰입도가 높다거나, 사람들의 감정적 반응의 정도가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세 번째 특징은 그렇게 빠르게 뜨거워진 의제가 자주 바뀐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들은 정책과 사회 문제가 만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한다.


문제가 제때 공론화되지 않고, 공론화된 뒤로도 제때 정책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적은 무수히 많다. 위기의 신호는 진작부터 나왔고, 본격적인 공론화는 올 초부터 시작된 전세 사기의 경우에도 국회에서의 특별법 입법 논의가 5월1일부터 시작됐고, 다섯 명이 사망한 뒤인 5월25일에야 특별법이 제정됐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최근 급격히 오르며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고, 예상과 달리 올해 하반기 역전세난이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특례 보금자리론의 영향으로 집값이 반등하며 주거 분야의 구조적 문제는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안들은 여간해선 공론화되지 않는다. 기후위기와 불평등과 같은 문제도 너무나 구조적이기에 제대로 공론화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공론장을 바꾸려면 참여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공론장의 연료는 인간의 관심이고, 관심이란 한정된 자원이다. 공론장에 한 번에 많은 의제들이 깊이 있게 논의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면 언론을 비롯한 공론장 참여자들은 이런 질문들을 자주 던져보며 자신이 하는 일과 공론장의 상태를 진단해봤으면 한다. “나는 사람의 관심이란 한정된 자원을 제대로 쓰고 있는가”, “지금 우리의 공론장에서 중요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논의되고 있는가”, “이전에 제기된 의제에 대한 정책이 여전히 논의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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