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127) 만나야 하지만 만나지 못한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조수정(뉴시스), 최주연(한국일보), 구윤성(뉴스1), 정운철(매일신문), 김애리(광주매일)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이념’이라는 보이지도 않는 존재가 억지로 갈라놓은 핏줄은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다. 자연의 섭리라면 차라리 이해라도 한다.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무던함과 무뎌짐으로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감정들이 70여년의 세월을 지났다.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아가는 인생의 종착점을 바라보면서 가족을, 식구를 만나고자 하는 마음 또한 현실의 팍팍함에 묻었다. 1988년 13만3682명이던 이산가족 신청인은 2023년 7월31일 현재 4만624명밖에 남지 않았다. 9만3000여명이 사망자다. 또 생존자 중 80세 이상의 고령자가 66.7%로 가족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왜 서로를 죽였고 왜 서로를 증오하며 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70여년이 넘는 지금까지 상처로 남겼을까? 하나의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하나의 민족이 둘로 갈라섰으며 하나의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버린 참혹한 전쟁은 아직도 그들에게는 진행중이다. 동북아의 국제정세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격랑에 빠져들고 다른 나라의 전쟁이 남북한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즘.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 헤어졌던 그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현생과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


상사화(相思花). 꽃이 필 때 잎은 없고 잎이 자랄 때는 꽃이 피지 않으므로 서로 볼 수 없다 하여 지어진 이름.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상사화야 많은 사람이 찾는다지만, 자연의 섭리가 아닌 인간의 진영논리로 헤어진 그들은 아무도 찾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 명절 때마다 모일 수 있는 가족과 함께 나누는 정 또한 꿈속의 일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이번 추석이 더욱 쓸쓸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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