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정 의원님, 제가 이건 국무위원으로서 말씀드리는 건데, 이동관씨가 뭡니까.” 지난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한 말이다. 이 보도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내 지식을 의심했다.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방송통신위원장이 국무위원이란 사실은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88조 2항에 따르면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각 부처의 장관들이 국무위원의 역할을 맡고 있다. 국무위원만이 행정 각 부의 장관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정 각 부의 장관만으로 헌법이 요구하는 국무위원의 수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관례적으로 참석하기도 하는데 방송통신위원회법 제6조 2항에 “위원장은 필요한 경우 국무회의에 출석해서 발언할 수 있으며”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국무위원 자격으로 참석하는 게 아니란 점이다.
이 사실이 밝혀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야당 간사가 방통위원장은 국무위원이 아니라 국무회의 배석자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다음 이동관 위원장의 답이 걸작이었다. “배석이 아니라 정식 멤버다. 의결만 안 할 뿐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상혁 전 위원장을 국무회의에 부르지 않았다. ‘국무위원이 아니라서 굳이 참석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자신이 대신해 들어간 전 위원장에게 일어난 일이니 이동관 위원장이 모를 리도 없는 일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신이 국무위원이라는 허위 정보를 내밀었고, 자신의 정보가 잘못된 것임이 바로 드러났음에도 끝까지 자신이 “정식 멤버”, 즉 공식적인 국무위원이라고 우긴 것이다.
철학자 해리 G. 프랭크퍼드는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에서 세상에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개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한다. 거짓말을 하는 이들은 최소한 자신의 말이 진실의 모습을 입고 있길 바라며 거짓이 드러나면 적어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개소리를 하는 이들’은 그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말을 꾸며대기에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자질은 뻔뻔함과 말을 그럴듯하게 즉흥적으로 꾸며대는 능력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다. 대통령 시절,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취했던 가장 중요한 ‘가짜뉴스’의 생산방식 중 하나는 자기들의 성향이나 기조와는 다른 기성 언론들을 모두 가짜 뉴스라고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특히 기성 언론은 사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본연의 의무 때문에 사소한 오보 하나만 드러나도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개소리를 무기로 삼았던 트럼프는 이런 의무에서 훨씬 자유로웠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트럼프는 유럽 난민 수용정책을 비판하며 이것이 테러 위협이 된다며, “어젯밤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을 보세요. 누가 믿겠어요? 이런 일이 스웨덴에서 일어났다고”라는 연설을 했다. 하지만 스웨덴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정작 해명은 스웨덴 정부가 해야만 했다.
“의결만 하지 않는 정식 국무위원.” 이것은 거짓말일까, 개소리일까? 만약 이게 개소리라면 우리 사회에 개소리로 거짓말을 때려잡는 시대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이 사실을 몰랐다면 그건 더 큰 문제라는 말만 덧붙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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