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를 여권 우위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해충돌’ 논란이 제기된 야권 측 정민영 심의위원을 보수단체가 고발하자 국민권익위원회가 현장조사에 돌입했고, 여권 측 심의위원들은 “특단의 조치”를 주문하고 나섰으며, 방송통신위원장도 “중대한 처벌 사유”라고 말해 사실상 교체는 기정사실이 된 분위기다. 지난달 17일 해촉된 정연주 전 위원장과 이광복 전 부위원장에 이어 정민영 위원까지 교체되면 방심위는 여야 동수에서 여권 다수 구도로 바뀌는데, 이를 토대로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에서 방심위가 첨병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8일 “정민영 위원이 임기 중 MBC의 소송을 대리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방송사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와 제재를 결정하는 방심위 위원이 방송사 소송을 대리하는 것은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이란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다음날 보수성향 시민단체가 정 위원을 권익위에 고발했고, 권익위는 정 위원이 심의에 참여한 회의록 분석 등 현장조사를 진행 중이다.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인 정 위원은 정연주 전 위원장 해촉 처분 집행정지 신청 건을 비롯해 MBC가 피소된 사건 여럿을 대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이 이해충돌방지법 또는 방심위가 지난해 5월 제정한 ‘임직원 이해충돌 방지 규칙’을 위반했는지 등이 쟁점이다. 방심위 사무처에 따르면 정 위원은 자신이 직접 관여한 사안과 관련한 심의에선 한 차례씩 제척·회피했으나, 그 외의 MBC 프로그램 관련 심의에는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심위는 정 위원에게 사실관계 등 소명을 요구하는 한편, 지난달 31일과 지난 5일 정 위원의 이해충돌 사항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두 번 모두 정 위원을 포함한 야권 위원들의 불참으로 회의는 불발됐으나, 황성욱 위원장 직무대행은 간담회로 전환해 정 위원의 행위를 공개 비판했다. 여권 위원들은 사실 확인이 우선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방심위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정 위원이 소명 요구에 끝내 불응했다며 단체 행동에 나설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앞서 4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에서도 정 위원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관련 질의에 “권익위에서 조사 중”이라면서도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중대한 처벌 사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방심위는 법률상 “독립적으로 사무를 수행하는” 민간기구지만, 방통위가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 예산을 배분하고 있다.
한편 5일 방심위 공개 간담회에선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김만배씨 ‘허위 인터뷰’ 의혹에 대한 여권 위원들의 강도 높은 제재 의지도 확인됐다. 황 위원장 직무대행은 앞서 이날 오전 열린 방송심의소위에서 1년 반 전에 보도된 뉴스타파 인터뷰 관련 사안을 긴급심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대통령실이 이날 “희대의 대선 정치공작 사건”이라며 성명을 낸 것과 보조를 맞춘 것이다. 정연주 전 위원장 후임으로 대통령이 위촉한 류희림 위원은 “이 사안을 방심위의 명운 걸고 철저히 심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3년 전까지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 몸담았던 김우석 위원도 “이 사안이 일정 정도 전범이 돼서 우리가 가짜뉴스에 단호히 대처한다, 좌시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드려야 한다”고 했다. 다만 뉴스타파는 방심위 심의 대상이 아니어서 뉴스타파를 인용해 보도한 지상파, 종편, 라디오 방송 등이 심의 및 제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황 위원장 대행은 “민원이 많이 들어온 것으로 안다”며 “민원의 취지에 따라서 방송된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빠른 시일에 정리되면 안건으로 올려 심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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