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내쫒은 방심위, 정부 '가짜뉴스·괴담 대응' 전초기지 되나

[정 위원장, 임기 1년 남기고 강제퇴진]
회계감사 경고·주의 조치 1주일 만
여권 위원들 류희림 위원 추대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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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임기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위원장이 임기를 1년여 남기고 강제 퇴진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정연주 방심위원장과 이광복 부위원장에 해촉을 통보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0일 방심위 회계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정 위원장 등에 경고·주의 등의 조치를 했다고 밝힌 지 1주일 만이다. 정 전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에 의해, 이 전 부위원장은 당시 여당(현 야당) 몫 국회의장 추천으로 위촉됐다.


방통위 회계감사에선 위원장·부위원장·상임위원의 근태 등 복무, 업무추진비의 부당 집행 문제가 주로 지적됐는데, 위반 사례 등이 더 많았던 황성욱 상임위원은 오히려 자리를 지켰다. 황 위원은 현 여권 추천 인사다. 회계감사는 핑계일 뿐, 야권 우위의 방심위 구도를 역전시키려는 목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정 전 위원장을 해촉한 다음 날 류희림 미디어연대 공동대표를 후임으로 위촉했다. 이로써 기존 여야 3대6의 방심위 구도는 4대4로 같아졌고, 이광복 전 부위원장 후임 인선까지 완료되면 5대4로 역전된다. 그 후 여권 측 위원들 주도로 류희림 위원을 위원장으로 추대해 본격적인 심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황성욱 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 22일부터 네 차례에 걸쳐 위원장 호선을 위한 임시 전체회의 개최를 시도했으나, 야권 측 위원 4인의 반대·불참으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서 파행만 거듭했다.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17일 임기를 1년여 남기고 해촉됐다. 그의 위촉 자체를 반대해왔던 국민의힘은 임기 중에도 거듭 사퇴를 요구해왔고, 결국 방통위의 회계감사 결과가 근거가 되어 강제 퇴진에 이르렀다. /방송통신심의위 제공


류희림 위원장 체제의 방심위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KBS를 거쳐 YTN에서 기자 생활을 한 류희림 위원은 2008년 YTN에서 벌어진 MB정부 첫 언론인 대량 해직 사태 때 인사위원을 지냈고, 이후 자회사인 YTN플러스 대표 등을 지내면서 방송을 사유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17년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발표한 ‘언론장악 부역자 50인’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류 위원 위촉을 두고 “임명권자의 분명한 ‘의도’가 있는 인사”라며 “언론의 독립성 훼손으로 더욱 정부에 충성하라는 의미로, 언론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이미 방심위는 2008년 출범 이래 ‘정치심의’ 논란 속에 ‘언론탄압의 도구’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판단이 엇갈릴 사안에 대해 공정성 잣대를 들이대 중징계를 일삼았고, 특히 MB정부 집권 초엔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MBC가 주 대상이 됐다. 공안검사 출신이 위원장으로 있던 2기 방심위에선 ‘이념심의’ 논란이 빈번했고, 뉴라이트 출신 학자가 위원장을 맡은 3기 방심위에서도 이처럼 이념과 공정성 등을 잣대로 한 정치심의가 횡행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엔 특정 프로그램에 대해 청와대 비서실장이 방심위 제재 검토를 지시한 사실 등이 밝혀지기도 했다. 방심위가 정권 차원에서 ‘방송 길들이기’에 활용됐던 셈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방심위는 방송심의에선 전보다 힘을 빼는 방향으로 갔다. 4,5기 방심위를 구성하는 데 도합 1년 넘게 시간을 끌며 출범을 지연시킨 점부터 그렇다. 대신 통신심의를 강화하면서 허위조작정보와 디지털 성범죄 신속 대응에 중점을 뒀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방역에 “중대한 위험”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왼손 경례’ 사진을 삭제·차단하는 등 ‘가짜뉴스’ 과잉 대응으로 역시 정치심의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방송 쪽에서도 정부에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는 공영방송 프로그램에 대해선 ‘봐주기’ 심의를 하면서, ‘종편 때리기’만 한다고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은 반발했다. 이런 불만은 윤석열 정부 들어 더 커져 정연주 위원장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고, 결국 정 위원장은 대통령에 의해 해촉된 최초의 위원장이 됐다. 지난 15년간 대통령이 방심위원을 해촉한 건 2020년 상임위원으로 재직 중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총선 후보로 공천을 신청해 논란이 된 전광삼 전 위원이 유일했다.


이제 여권 우위로 방심위 재편이 완료되면 그간 여권 측에서 ‘거북이 심의’라 비판해온 방송심의 및 제재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이후 정부여당이 이에 비판적인 보도를 ‘가짜뉴스·괴담’으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을 벼르고 있어 관련 방송과 인터넷 게시물 등에 대한 무더기 심의도 예상된다. 국민의힘 가짜뉴스·괴담 방지 특별위원회(위원장 김장겸)는 지난 28일 논평을 내고 “MBC가 ‘정치인’을 ‘어민’으로 둔갑시켜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 유포에 앞장서고 있다”며 “방송법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 특위는 앞서 지난 22일 ‘가짜뉴스 괴담, 무엇을 노리나?’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유튜브 등 OTT의 가짜뉴스 제어를 위한 방심위 역할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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