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가 내년이면 환갑을 맞이합니다. 기자협회는 1964년 창립부터 지금까지 참으로 수많은 고난과 질곡의 역사였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언론을 통제하려고 시도한 ‘언론윤리위원회법’ 철폐를 위한 투쟁의 구심체로, 1964년 8월17일 창립했습니다. 그해 여름, 선배 기자들은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저지하고 언론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폭염보다 더 뜨겁게 결의를 다졌고 결국 악법의 폐기를 이끌어냈습니다.
이후에도 한국기자협회는 정치권력의 탄압과 자본권력의 회유에 맞서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고, 권력의 언론장악 시도에 결연히 맞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수배와 고문, 투옥의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1975년 동아·조선 해직 사태,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기자 대량 해고 사태, 2008년 YTN과 2012년 MBC 기자 무더기 해고 사태에서 보듯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요구하는 언론인들의 정당한 주장에 해고의 칼날을 휘두르는 만행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호반건설 비판 기사를 서울신문에서 모두 삭제한 이른바 ‘현대판 분서갱유 사건’에서 보듯이 자본 권력의 언론 침탈도 저널리즘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이처럼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야만적인 탄압에도 결코 굴하지 않으며 꿋꿋하게 성장해왔습니다.
고난과 질곡의 세월을 견뎌냈지만 오늘의 언론 상황은 또다시 큰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권력은 본디 언론을 장악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입으로는 “언론은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해서도 안된다”고 말하지만 속내는 정반대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기형적인 3인 체제인데도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속전속결로 처리한데 이어 KBS 이사장 해임건의안을 의결하고 MBC 방문진 이사장에 대한 해임도 강행할 태세입니다. 정부는 YTN 민영화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고, 서울시는 TBS의 목줄을 죄고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동관 특보에 대한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설이 나돌던 지난 6월 말,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반대 80%, 찬성 13%였습니다. 반대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많은 80%가 이명박 정부 때 언론 탄압에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꼽았습니다. 응답률도 1500명에 육박할 정도로 매우 높았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들의 압도적 여론을 무시한 채 이동관 특보에 대한 방통위원장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의 언론 장악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기자들은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과중한 업무와 속보 경쟁에 따른 부담과 압박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세상을 스스로 등지는 기자도 한둘이 아닙니다.
기자를 지칭하는 비속어가 자연스러워지고, 기자들을 희화화하는 세상입니다. 댓글 공격에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저희 기자협회는 기자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오랜 기간 작업 끝에 최근 ‘언론인 트라우마 가이드북 1.0’을 발간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저희 기자들도 뼈를 깎는 성찰과 반성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정파적 보도는 언론을 깊은 수렁에 빠뜨리게 합니다. 악의적 오보는 제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영화 < She said >는 전세계 미투 운동을 촉발한 뉴욕타임스 여성 기자 2명의 활약상을 보여준 실화입니다. 두 기자는 할리우드의 추악한 권력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의혹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침묵하는 피해자들과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에 여러 번 좌절합니다. 하지만 놀라울 만큼 침착한 모습과 팩트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취재 과정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 언론도 조급증에서 벗어나 언론의 본령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방향의 끝에는 ‘진실’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는 기자라서 자랑스러운 아들, 딸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는 자랑스러운 기자엄마, 기자아빠입니다. 우리 기자들이 보다 나은 언론 환경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한국기자협회가 든든한 버팀목, 비빌 언덕이 돼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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