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8월이다. 2008년 8월8일, KBS 내부에 경찰력이 투입된 초유의 상황 속에서 KBS 이사회가 정연주 당시 사장 해임제청안을 의결한 그날은 KBS 구성원들에게 ‘치욕의 역사’로 각인돼 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2023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가 KBS 이사장 해임건의안을 의결했다. 대통령 재가를 통해 이사장 해임이 확정되고 정부여당 쪽에서 후임 인선을 완료하면 KBS 이사회 여야 구도는 4대7에서 6대5로 바뀌게 된다. 이후 KBS 이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당장 KBS 사장 해임부터 지역방송국의 설치 및 ‘폐지’, 기본재산의 취득 및 ‘처분’ 등 방송법이 정한 KBS 이사회의 기능은 상당하다. 단순히 KBS 사장을 교체하는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직까진 ‘설’로만 거론되는 KBS 2TV 민영화, 내부 감사를 통한 징계 및 인사 외압 등 조직 흔들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를 허황한 시나리오로만 볼 수 없는 건 2008~2010년 당시 청와대 ‘실세’로 있으면서 KBS·MBC 이사진과 사장 교체 등 ‘방송장악’에 관여했다고 비판받는 이동관씨가 차기 방통위원장에 내정됐기 때문이다. 이동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18일 열릴 예정인 가운데, 같은 MB정부 수석비서관 출신인 김효재 방통위 부위원장(위원장 직무대행)은 KBS 이사장 해임건의에 이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해임안 처리를 예고하며 공영방송 이사진 재편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김효재 위원장 직대’ 체제 방통위의 지난 두 달여 간 행보는 상상을 초월한다. 김효재 위원이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은 건 윤석열 대통령이 한상혁 위원장 면직안을 재가한 다음 날인 5월31일부터다. 이후 두 달 반 남짓 동안 방통위는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상정부터 입법예고, 의결까지 속전속결로 처리했고, 방문진에 대한 검사·감독 등을 시행했으며, KBS·방문진·EBS 이사 5명의 해임을 처리했거나 추진 중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 초반에도 방통위가 3인 체제로 운영되며 여당 측 위원이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은 적이 있지만, 해당 기간 회의 개최는 최소화됐고, 방송통신계에 파장을 미칠 중요한 의사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김효재 위원장 직대 체제에선 회의만 13차례나 열려(14일 기준) 수신료 분리징수와 KBS 이사장 해임 같이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들 중요한 의사결정들이 이뤄졌다. 5인이 정원인 방통위에서 3인의 위원이 참석, 그 중 정부여당 측 2인의 찬성만으로 처리된 게 다수다.
이 과정에서 법과 원칙, 절차가 무시됐다는 비판이 방통위 안팎에서 잇따랐으나 무시됐다. 현 방통위에서 유일한 야당 측 인사인 김현 상임위원은 14일 남영진 이사장 해임건의안 의결로 김효재 직대가 “여덟 번째 직권남용”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윤석년 KBS 이사 해임건의안을 의결할 때만 해도 “최소한의 형식적인 절차”라도 거쳤으나, “남영진 KBS 이사장의 해임은 법·원칙·절차를 무시하고, 사실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직권남용 행위의 전무후무한 종합편”이란 것이다. 그는 “김효재 직무대행은 추후에 문제가 생기거나 소송에서 패하더라도 우선 이사 해임을 통해 방송장악을 하겠다는 도 넘은 과잉충성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호찬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도 14일 방통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MB정권 때만 해도 최소한의 절차를 지키려는 시늉은 했다”면서 “하지만 이 정권은 말 그대로 막무가내 폭거다. 온갖 의혹을 부풀려 놓고 여기저기 고발과 신고를 해놓고 그 결과도 기다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언론현업·시민단체들은 “법과 절차를 무시한 폭력적 숙청극의 배경은 단 하나”라며 “이동관을 앞잡이로 내세워 진행될 미디어 공론장 파괴와 공공성과 공정성 후퇴, 친정권 나팔수 공영방송 만들기, 그리고 이를 넘어선 공영방송 해체를 가속화하기 위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방송장악 기술자’라 비판하는 이동관 후보자의 복귀, 2009년부터 약 10년간 방문진·KBS 이사를 연이어 역임하며 ‘극우’ 편향 인식을 드러낸 차기환 변호사의 방문진 이사 재선임 및 이사장 내정설 등. 이 정권과 방통위가 보이는 행보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방송장악의 전과가 전과(前過)가 아니라 성과(成果)라고 이 정권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호찬 본부장은 말했다.
국정원이 2010년 3월 작성했다는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에는 △간부진 인적 쇄신 △노조 무력화 및 조직 개편 △소유구조 개편 등 3단계 계획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명박 정부는 당시 2단계까지 실행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당시 문건의 실질적인 작성 지시자로 추정되는 청와대 홍보수석실, 그 정점에 있었던 이동관 당시 홍보수석이 곧 방통위원장으로 돌아온다. 김효재 위원장 직대가 오는 23일까지 공영방송 이사진 재편을 완료하면, 이동관 위원장의 6기 방통위 하에선 공영방송 사장 및 간부진 교체 후 연말 재허가 심사와 함께 KBS2TV·MBC 민영화 등 소유구조 개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여기서 이 폭력 막장 드라마를 멈춰 세우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공론장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 것”이라며 “지금 필요한 건 방송장악의 도구, 윤석열 정부의 심부름꾼이 된, 그래서 독립성과 합리성을 모조리 상실한 방송통신위원회를 해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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