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한 업무 시간, 술자리가 잦은 기자들에겐 꾸준한 운동은 사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운동이 일상 속에 자리 잡은 기자 3명이 있다. 지친 일과 속에서 틈틈이 몸을 써보니 이전과는 삶이 달라졌다고, 특히 기자 업무로 인한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약해진 ‘멘탈’을 단련하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말한 기자들도 있다. 올해 하반기를 맞아 운동을 목표로 세운 기자들이 있다면 이들의 이야기를 눈여겨보면 어떨까.
아내, 아들과 함께...배드민턴 ‘고수’ 기자
최지환 YTN 기자는 가족들과 국내 여행을 갈 때면 배드민턴 장비를 챙긴다. 여행지마다 있는 배드민턴 구장에 들러 그 지역 동호인들과 시합을 치르고, 뒤풀이도 하는 게 또 다른 묘미이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동호인 급수는 초심부터 D·C·B·A조 순으로 분류되는데 최 기자와 그의 아내는 최고 레벨인 A조에 해당하는 고수 중에 고수다. 그래서인지 배드민턴 동호인 사이에서 이들은 마치 ‘셀럽’처럼 여겨지곤 한다.
“전북에만 60개 클럽이 있을 정도로 배드민턴은 축구 다음으로 동호인이 많은, 저변이 튼튼한 종목이죠. 그 중에 A조는 전국 동호인의 10% 미만일 거예요. 한 번은 제주도에 놀러갔는데 ‘육지에서 A조가 왔다’며 그 지역 동호인들이 섬에서 가장 잘 치는 사람을 부를 정도였어요. 결국 2대1로 저희가 이겼죠(웃음).”
원래 그는 운동을 하는 것도, 보는 것도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2011년 허리 통증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운동을 하라는 조언으로 시작한 게 배드민턴이었다. 처음 의사의 추천대로 수영, 자전거 타기를 하다 친구와 근처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겨울이 되자 너무 추워 주변 체육관에 들어갔는데 선수처럼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동호인들을 발견했다. “나도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레슨을 받았고, 비슷한 시기 YTN 전북본부 동료들과 함께 동호회에 들어갔다. 많게는 일주일에 세 번 운동하며 그렇게 배드민턴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됐다.
구기 종목 중 가장 볼 스피드가 빠르다는 배드민턴. 선수급은 볼 속도가 시간당 400km일 정도로 격정적인 스포츠다. 부상을 피하고, 배드민턴을 더 잘하기 위해 꾸준히 스트레칭과 코어 훈련을 하다 보니 못 일어날 정도로 아팠던 그의 허리 통증은 어느새 사라졌다.
최 기자와 그의 아내는 배드민턴으로 이어진 인연이다. 소개로 만난 자리, 서로의 취미를 물어보다 배드민턴이라는 공통점을 찾게 됐다. “사실 그것 때문에 결혼할 수 있었던 같은데 취미가 배드민턴이라고 하니 아내가 저에게 호감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배드민턴 치고, 밥 먹는 만남이 이어졌고, 결혼까지 하게 됐죠. 부부끼리 취미가 안 맞는 경우가 많은데 취미 활동 시간만큼은 함께 있고,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어 지금도 잘 살 수 있는 거 같아요.”
결혼 전 이미 A조였던 아내를 따라 고수들과 배드민턴을 치면서 자연스레 실력도 쌓았다. 2019년 첫 동호인 대회를 나갔는데 그해 나간 대회마다 우승을 거머쥐며 C조였던 최 기자는 곧바로 A조로 승급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도 부모를 보고 자라 와서 그런지 다니는 학교에서 배드민턴을 잘하는 편이다. 그의 목표는 내년 아들과 한 팀을 이뤄 나가기로 한 ‘전북가족한마당 배드민턴 대회’ 우승이다. 주말마다 아들은 레슨을 받고, 최 기자는 같은 수준의 동호인 모임을 만들어 열심히 훈련 중이다.
“시간, 공간 제약 없이 가족과 함께할 수 운동이라는 게 배드민턴의 가장 큰 매력이죠. 동호인 세계에선 부모를 따라 아이가 시작하고 그 아이가 성인이 돼 노년인 부모와 같이 배드민턴을 치는 사이클이 이어져오고 있어요. 편하게 근처 배드민턴 체육관으로 가보세요. 옆에서 치고 있는 동호인들을 보고 ‘이야 재밌겠네’라는 생각이 들면 시작하게 될 겁니다.”
요가, 케틀벨, 수영, 사이클, 달리기 이어...철인3종 도전하는 기자
정인선 한겨레 기자는 인스타그램 본계정 외에 운동 계정을 따로 개설해 자신의 운동 기록을 틈틈이 담는다. 이 ‘운동스타그램’에서 그는 각종 기구를 이용한 근력 운동, 달리기, 자전거 라이딩, 등산 인증 사진을 비롯해 고난도 요가 동작도 선보인다. 정 기자는 “운동 기록을 올리면 지인들과 서로의 경험을 나누게 되고 좋은 자극도 받는다”며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이기도 한데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꾸준히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정 기자는 일주일 내내 운동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일 출근 전 새벽 시간엔 요가와 수영을 번갈아 하고, 출근 이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케틀벨(추 모양의 운동 기구) 운동을 한다. 주말엔 시간이 나면 사이클이나 달리기도 한다.
7년 차 기자인 그가 각종 운동을 즐기게 된 건 20대 초반 새벽 수영을 하면서부터다. 취업 준비를 하며 불면증이 생겼다. 잠을 잘 자려면 하루 동안 몸을 많이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운동이었다. 술도,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해 저녁보다는 아침에 운동하는 습관을 들인 것도 이 때부터였다. “키가 큰 편인데 20대 땐 조금만 몸무게가 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자존감도 낮은 편이었어요. 지금은 체중이 늘었다 줄었다 해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어요. 특히 작년 케틀벨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집에 오자마자 불도 못 끄고 곯아떨어져요. 언제 불면증이 있었나 싶죠.”
정 기자는 “주변에서 일은 안 하고 운동만 하는 거 아니냐고 할 것 같다”며 걱정도 했지만, 운동은 그가 기자 일을 할 때 큰 도움을 준 존재다. 우선 달리기, 풋살 등의 운동은 동료와의 좋은 관계를 만들어줬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 운동 좋아하는 한겨레 선배들과 일주일에 한번 씩 뛰었어요. 1년 정도 하고 나니 마라톤 풀코스 대회도 나가게 될 정도로 늘더라고요. 혼자 했으면 못했을 거예요. 40~50대 선배들이었는데 연령을 초월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도 좋았어요.”
직장 생활을 하며 시작한 요가는 무엇보다 마음을 단련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 “기자 일이라는 게 변수가 많잖아요. ‘왜 전화를 안 받을까, 원하는 얘기를 왜 해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힘겹죠. 그런데 요가를 하다보면 잘 되던 자세가 전날 잠을 잘 못 잤거나 술을 많이 먹었거나 하면 안 될 때가 있거든요. 스트레스 받기보다 ‘어쩔 수 없는 거구나’ 마음을 연습하게 해준 달까요?”
“한겨레신문 빅테크팀에서 국내외 정보기술(IT) 산업을 취재한다.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등산,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 그가 토요판에 연재한 칼럼 <#오늘하루운동 요가>에 올린 자기소개다. 여기에 그의 운동 종목이 하나 더 추가될 예정이다. 내년 여름, 철인3종(수영, 사이클, 마라톤 등 세 종목을 휴식 없이 연이어 실시하는 경기) 대회에 나가기 때문이다. 요가 편이 연재 종료된 이후엔 철인 3종에 대한 칼럼을 실으려 한다는데 그의 새로운 운동 이야기가 기대된다.
숨 참고 바닷속 다이빙하는 기자
지난해 10월 강서영 여수MBC 기자는 요트를 타고 15분 정도 나가 여수 인근 바다 한가운데에 다다랐다. 그가 바다에 나온 건 수심 10m 이상 잠수에 성공해야 얻을 수 있는 프리다이빙 레벨2 자격증 테스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차갑고, 새까맣게 일렁이는 바다에 몸을 담글 땐 두려움이 컸다. 우선 머리를 담그려하니 수영장과는 달리 바다엔 온갖 부유물이 떠다니고 있어 불쾌한 기분도 들었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견뎌내며 강 기자는 눈을 감았다. 프렌젤(수압이 높아질 때 체내 공기를 고막 안쪽으로 보내 압력을 맞추는 기술)에 집중하며 안전줄을 잡고 서서히 내려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손끝에 수심 10m를 알리는 표시가 느껴졌다.
“눈을 딱 떠보니 처음 보는 곳에 제가 와 있는 거예요. 맨몸으로 온전히 나의 숨만을 가지고 수심 10m 바다에 들어가 본 적 있나요? 위를 올려다보고, 밑을 봐도 제 몸이 바닷속으로 가득 찬 그 경험이 너무나 황홀했어요.” 이날 그는 처음으로 10m 바다 잠수에 성공하며 레벨2 자격증을 따냈다.
강 기자가 말하는 프리다이빙은 “멘탈 스포츠”다. 수중 호흡 장비를 다는 스쿠버 다이빙과는 달리 무호흡으로 깊은 수심까지 잠영하는 운동이라 “릴렉스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잡생각을 하거나 불안해하면 뇌가 산소를 빨리 소모한다고 해요. 물속에 오래 버틸 수가 없는 거죠.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숨이 3분, 4분도 참아지는데 당황하면 1분도 못 참고 물 밖으로 나오게 되더라고요.”
기자라면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곤 하는데 일단 물속에선 말할 상대가 없고,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단절된 기분”이 새로웠다고 강 기자는 말했다. 부드럽게 물을 가르며 “마치 정육면체 공간에서 3차원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느낌”도 좋았다. 평소 꾸준히 하는 운동이 없던 그가 재작년부터 주말마다 여수에서 프리다이빙 풀장이 있는 광주로,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가면서까지 프리다이빙을 배웠던 이유다.
“10m 잠수를 1년 반 만에 성공한 건데 사람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엄청 늦은 편이거든요. 보통 안 되면 포기하는데 계속 나와서 사람들이 ‘쟤는 프렌젤도 안 되는데 왜 맨날 오지?’라며 의아해했대요(웃음). 저는 그만큼 물이 좋았던 거죠.”
다행히 작년부터 여수에도 프리다이빙 풀장이 생겨 강 기자는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강습을 받을 수 있었다. 남아있는 목표는 수심 25m 이상을 들어가야 하는 레벨3 자격증이다. “강습 첫날 5m 풀장을 보면서 ‘선생님 저 못 들어가요’ 했거든요. 처음엔 다 두려울 텐데, 결국 이겨낼 수 있다는 걸 프리다이빙을 통해 배우고 있어요. 25m 시험도 몇 번씩 떨어지겠지만 언젠간 이 수압에 적응하고 자격증을 따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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