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탄 택시, 탑승 손님이 기자란 사실을 안 기사님은 걱정거리를 늘어놨습니다. 코로나19로 실직한 20대 딸. 급전이 필요했지만 아빠에게 손 벌리기가 미안해 불법 사채를 썼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딸을 보며 방법이 없겠냐는 기사의 말은 어떻게 보면 지나칠법한 하소연이었습니다.
하지만 딸을 만나봤습니다. ‘20만원’. 소액 대출이었지만 여성에겐 소중한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중개 플랫폼으로 돈은 쉽게 빌렸지만 연 3000% 사채의 늪에 빠졌습니다. 살인적인 이자에 돈을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들은 여성의 사진을 나체 사진과 합성해 유포하겠다며 협박했습니다.
그렇게 취재를 시작했고 수십 명의 피해자들을 만났습니다. 일명 ‘나체 추심’이라 불리는 신종 범죄의 피해자들은 24시간 욕설과 협박은 물론 따돌림과 퇴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을 찾았지만 대포폰과 대포 통장이라 추적이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이를 알리는 일은 저희 몫이었습니다. 수사 당국의 안일함부터, ‘합법’ 대출 중개 플랫폼에 등록된 불법 대부업체의 실태 파악 등 피해의 덫들을 찾았습니다. 보도 이후 본격적인 경찰 수사가 시작돼 총책 등 피의자 검거, 금융당국의 대책이 하나둘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수상자 선정 문자를 받은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재하며 ‘더 큰 사건 없나, 더 센 것 없나’에 빠져 있던 건 아닌가. 작지만 중요한 이야길 놓친 건 없었는지 돌아봤습니다. “방법이 없겠냐”는 택시 기사의 고민을 기자 4명이 물고 늘어졌듯, 작은 이야기도 귀담아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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