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저널리즘, 이용할 것인가 이용당할 것인가

[Books] AI 저널리즘·챗GPT와 생성 AI 전망·AI지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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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시대다. 이 ‘게임 체인저’가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두고 기대와 전망, 우려가 공존한다. 언론계 역시 이 거대한 파고에 휩쓸릴 것이다. 이를 위한 준비와 대응 차원에서 책을 추천한다. < AI 저널리즘 >(두리반), < 챗GPT와 생성 AI 전망 >(커뮤니케이션북스), < AI 지도책 >(소소의책) 등 3권은 당장의 쓸모와 관련된 책은 아니다. AI를 마주한 언론사와 우리 사회 전반의 과제를 알려주고, 이 거대 현안에 대한 기자적 시각에 영감을 주려는 의도가 가장 컸다. 생존의 문제 앞에 ‘구명정’이 아닌 ‘옷’을 내놓는, 한가한 소리일지 모른다. 다만 언론과 기자에겐 살아남는 것만큼이나 이후 어떤 형태로 살아남아있을지가 중요한 문제란 변명을 남겨둔다.

“AI는 기자를 대체하지 못한다. 하지만 바꾼다.”

책 <AI 저널리즘>

2015년 5월 미국 공영방송 NPR 백악관 특파원 스콧 호슬리와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의 자동화 소프트웨어 워드스미스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유명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데니스의 수익 보고서에 대한 300자 분량 라디오 기사를 최대한 빨리 작성하는 대결이었다. 워드스미스는 2분, 스콧 기자는 7분 가량이 걸려 ‘로봇기자’가 승리했다. 다만 비공식 여론결과 NPR 청취자들은 ‘인간기자’의 기사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챗GPT 부상 이후 언론계에서 가장 먼저 나온 질문 중 하나가 ‘AI가 기자를 대체할 것인가’였다는 점에서 이 이벤트는 전조처럼 와닿는다.


책 < AI 저널리즘 >(저자 박창섭)은 언론사에 몸담았고 현재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저자의 ‘자동화 저널리즘’에 대한 기록이다. 책은 AI 기술을 일찌감치 활용해 온 세계 언론의 과거, 현재를 꼼꼼히 적시하며 우리 사회와 저널리즘에 미칠 영향을 살핀다. 단순히 활용 사례나 장단점의 나열이 아니라 언론사란 기업에 시사하는 가능성과 한계, 나아가 저널리즘이란 사회적 활동의 수행처인 언론에 남기는 윤리적 과제와 의미를 종합적으로 담았다는 의의가 있다. 책에 제시된 앞선 일화만 해도 근 10년 전 일이었지만 이 기술의 쓸모와 파장, 의미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려는 시도는 드물었다.


챗GPT 등장 후 갑작스레 사회 전반에서 AI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지만 책을 보면, ‘자동화’나 ‘AI의 활용’은 이미 세계 언론에서 지속 시도된 유구한 흐름이었다. 지진이 나면 자동으로 기사를 쓰는 LA타임스의 ‘퀘이크봇’, 워싱턴 D.C. 지역 고등학교 미식축구 경기를 보도하는 워싱턴포스트의 자동화 소프트웨어 ‘헬리오그래프’, 연구를 수행하는 기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기사를 제공하는 BBC의 데이터 추출도구 ‘주서’처럼 취재·제작에 AI를 이용하는 사례만 봐도 부지기수다. ‘저널리즘의 꽃’이라 할 대표 탐사보도 ‘파나마페이퍼스’, ‘판도라페이퍼스’에도 AI 기술이 활용됐다. 마케팅, 댓글 관리, 독자 응대 등 저널리즘 비즈니스 영역에 걸친 네덜란드, 스웨덴, 미국 등 언론의 AI 이용 실례를 제시하며 책은 틈새뉴스, 지역콘텐츠 활성화, 맞춤형뉴스 제공처럼 AI가 저널리즘 영역 확대에 기여할 지점을 설명한다.


이 같은 현재는 불가피하게 ‘AI의 인간기자 대체’ 가능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기존 조사와 AI를 도입한 뉴스룸의 운영현실,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터미네이터’나 ‘월리(Wall-E)’가 아니라 AI 기반 청소기인 ‘룸바’에 가까울 것이고 “기자의 업무를 측면에서 지원하게 될 것”이란 입장을 표한다. 사회적 산물로서 뉴스 성격을 기계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태생적 한계를 들면서 책은 다만 AI가 기자의 작업을 실천하는 방식을 바꿀 것이고 궁극적으로 ‘인간과 기계의 결혼’이란 관계를 형성할 것이란 예측을 전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기자가 기계에 대체되지 않기에 안심할 수 있다는 차원을 넘어 훨씬 광범위하게 언론의 윤리, 조직·공동체에 미칠 영향, 비즈니스적 대응 등과 맞물리는 문제다. ‘기자가 단순 정보 전달자에 그칠 가능성’, ‘자동화를 통한 뉴스 개인화가 필요한 사안 대신 원하는 걸 알려주는 문제’, ‘자동화 저널리즘이 기사 결정권과 인력배치에 미칠 영향’, ‘자극적인 기사 양산, 광고수익 만회의 도구가 될 소지’ 등만 해도 단순치 않은 사안이다.


책은 ‘기술은 변하지만 저널리즘의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AI 업계 관계자의 “모든 언론 매체는 자동화에 대한 압박을 받을 것”이며 “자동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동화될 것”이란 발언도 적는다. 저널리즘은 남아도 이 자동화 흐름이 언론사나 기자에 큰 변화를 예고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제 막 본격화된 문제에 언론은 어떤 준비를 해야할까. 기자들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유구했던 과거’의 연장선이자 이미 성큼 ‘다가온 미래’에 고민이 깊어진다.

‘생성 AI’의 거의 모든 걸 다룬 교과서를 찾는다면?

책 <챗GPT와 생성 AI 전망>

책 <챗GPT와 생성 AI 전망>(저자 김태균·권영전·성서호·박주현)은 연합뉴스 콘텐츠인큐베이팅팀 소속으로 수년간 AI 뉴스 서비스의 기획 실무를 맡아온 기자와 엔지니어 4인이 공저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내놓은 개론서다. 책은 창작 측면에서는 사람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AI에 대한 상식이 지난해 챗GPT 공개 이후 무너지고 사회적·산업적 관심 역시 놀랍게 높아진 현 시점, ‘생성 AI(generative AI)’ 전반에 대한 개괄과 이해를 돕는다는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며 ‘새 상식’을 위한 단초로서 역할을 이행한다.


책은 생성 AI의 ‘교과서’처럼 쓰였다. 170여 페이지로 이뤄진 책은 구성면에서 생성 AI와 관련해 많이 언급되는 ‘초거대 AI’, ‘기반모델’, ‘거대언어모델(LLM)’, ‘멀티모달’, ‘파라미터’, ‘AGI’등 용어 설명을 비롯해 작동원리, 인공신경망의 기본구조, 챗GPT의 성능 같은 기초정보를 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용면에서도 하나의 논지를 설득하려고 달리는 책이 아니다. 개론서로서 성실한 사례 제시와 친절한 설명을 방법론으로 삼되 AI로 인해 이미 발생했고 향후 우리 사회의 중요 문제가 될 지점들에 대해 최대한 다양한 관측과 입장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 이 책이 집중하는 부분은 생성 AI가 사회 전반에 미칠 파장과 영향이다. 전체 9개 챕터 중 5개가 여기 할애됐다. ‘페이크 뉴스’, 즉 허위·조작 정보 영역에 생성 AI가 적극 활용될 가능성을 다룬 챕터는 대표적이다. 책은 챗GPT의 작동원리로 인한 ‘환각’으로 ‘가짜뉴스 생성과 유포’, ‘딥페이크를 통한 디지털 성범죄’, ‘사칭 위협’을 기존 발생한 의미심장한 사례들과 함께 제시하며 관련 법제 마련 움직임까지 함께 전해준다. 이 같은 식으로 책은 ‘저작권, 데이터, 개인정보’ 문제, ‘창작에 미칠 영향’, ‘언론계와 기자의 고민’, ‘교육에 미칠 여파’까지, 생성 AI가 야기할 현재 혹은 잠재적 이슈의 파편들을 그러모은다. 이 문제들은 챗GPT가 사실이라 답했던 ‘세종대왕 맥북투척 사건’처럼 웃고 넘길 에피소드가 아니라 독일 주간지의 ‘F1 레이싱 선수 조작 인터뷰’, ‘대학과 창작현장의 대필과 표절’처럼 프리뷰 성격이 짙다.


전조에 전망을 더하며 책은 AI가 국내 언론에 미칠 영향도 언급한다. 언론사 구성원들인 저자들은 채팅 형태의 생성 AI가 포털에서 웹페이지를 일일이 찾을 필요 없이 만들 소지를 거론하며 사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고, 한국 언론은 더 취약할 것이라 적는다. 자칫 “네이버·다음의 콘텐츠제공자(CP)로 발이 묶여 있다가” “도로 생성 AI의 데이터제공자(DP)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책 전반에서 저자들은 “인간의 몫”을 강조하고, “생성 AI의 가치는 무엇인지, 어떤 일은 시키지 말아야 할지, 인간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논의”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성격을 분명히 한다. 많은 콘텐츠들이 AI를 숨가쁘게 다루는 시기, 그동안의 모든 걸 한 데 모아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게 써내는 개론서는 소중하다. ‘공부의 계기’ 혹은 ‘가성비’ 차원을 넘어 이런 때야말로 아무도 뒤처지게 두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AI란 ‘추출산업’이 남긴 곤란한 질문들과 언론의 할 일

책 <AI지도책>

동·서양의 옛 지도에서 종교관이나 세계관을 드러내는 일은 흔하다. 특정 도법을 사용한 지도가 서구 우월주의를 합리화하거나 냉전시기 영향력 강조를 위해 쓰였다는 얘기도 익숙하다. “지도에는 목적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 ‘AI 지도’는 어떤가. < AI 지도책 >(저자 케이트 크로퍼드)은 현재 AI가 하는 일을 이렇게 표현한다. “신과 같은 중앙 집중적 관점에서 인간의 동작, 소통, 노동을 바라보며 제 나름의 지도를 만들고 표준화하고 있다.” “세계에 대한 하나의 지도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지도책을 만들어 지배적 관점을 확립하려는 욕망이다.” 즉, 이 지도는 지형지물 표기 차원을 넘어 우리 삶을 통째 AI의 체계로 재정렬하려는 작업이다.


책은 대여섯개 기업이 제작 중인 이 주류 지도에 불가피하게 깃든 ‘정치성’이 시민 개개인, 나아가 지구적으로 미칠 영향에 우려를 표하며 대안적 지도를 제시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 선임 수석 연구원, 영미권 유수 대학 교수, 미국 뉴욕대 AI 나우 연구소 공동설립자 등 경력의 AI 전문가로서 저자는 AI 산업을 현실 세계의 ‘부와 권력 재배분’ 이슈로 본다. 알고리즘적 혁신, 점진적 제품 개량, 편의성 향상 같은 기술적 측면에 집중된 담론은 마치 AI를 ‘하늘에서 뚝 떨어진 미래’처럼 여기게 만들지만 실상은 기존 물적토대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지구의 에너지와 광물자원, 값싼 노동력, 대규모 데이터”를 대가로 돌아가는 “추출 산업”이란 재규정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보면 AI 산업은 “‘무엇이 누구를 위해’ 최적화 되고 ‘누구에게’ 결정권이 있는지 물어야”하는 현안이고, “정의의 실현과 권력의 제한”이란 유구한 민주주의의 사안이 된다.


이 주장은 AI산업의 물적토대와 작동 면면을 상세히 전하는 방법으로 설득을 한다. 참고문헌 등을 제외한 300페이지 분량을 AI 산업 안팎에서 중요 의미를 지닌 ‘지구’, ‘노동’, ‘데이터’, ‘분류’, ‘감정’, ‘국가’ 등 키워드로 구성하고 각각에 실상을 담은 형태다. 예컨대 책 시작과 함께 미국 네바다 주 클레이턴 밸리 내 리튬 광산촌의 황폐한 모습을 보여주며 저자는 이 마을로 인근 샌프란시스코 기술업계가 가장 이득을 봤다며 ‘깊은 갱도’와 ‘높은 마천루’를 등치시키고, 기술 붐이 샌프란시스코를 미국에서 노숙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몽골 등 전 지구적 외딴 채굴 현장을 횡단하며 지구환경, 빈곤층의 삶 같은 “채굴의 진짜 비용을 AI업계에서 부담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특히 ‘노동’ 챕터에선 실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책은 AI 시스템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고학력 저임금 노동자의 존재를 보여주며 “플랫폼이 인간 노동자와의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생계비가 들지 않는 거대한 컴퓨터인 것처럼 감시 없고 값싸고 마찰 없이 과제가 완수되리라 기대하”지만 “투자자와 어수룩한 매체에 보여주기 위해 설계된 허울”이라고 적시한다. ‘작업이 초단위로 기록되는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로봇처럼 일하는 인간’의 모습에선 AI의 감시가 작업장의 노동자 통제 역사에서 가장 최신 버전일 뿐이란 입장도 표한다. ‘데이터’, ‘분류’, ‘감정’처럼 AI의 정치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에 깃든 정치·사회·군사적 배경과 논의 역사, 한계 등을 전한 책은 ‘국가’ 챕터에 이르러 ‘자동차 번호판을 자동 인식해 경찰 등에 판매하는 기업’, ‘데이터를 수집해 이민자, 메디케어 부정수급자 등 잠재적 말썽꾼 색출을 돕는 회사’를 사례로 국가기능이 기업의 알고리즘 통치에 외주화된 현재도 조명한다.


챗GPT의 성과 이후 AI에 대한 관심 역시 폭증했고 기술과 혁신, 산업육성의 방향에서 많은 보도가 잇따르지만 책을 보고 나면 우리의 현재 AI 지도와 관련 논의는 매우 제한적이란 소감이 남는다. AI가 단지 기술이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힘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대규모 산업적 구성물”이라면, 정말 필요한 질문은 아직 던져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이 로봇처럼 취급받는 경향이 어떻게 증가할 것이며 이것이 노동의 역할과 관련하여 무엇을 의미하는가”란 문장이 AI 시대 우리가 던져야 할 “곤란한 질문”의 핵심 성격일지 모르겠다. 이 모든 문제는 시민 개개인의 삶을 통해 실현되는 현안으로서 결국 언론의 일로 돌아올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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