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으로 성큼… 강원일보 '리빙랩 저널리즘'
[언론, 관찰자서 참여자로 변신]
지역사회 문제, 취재원과 함께 실험
리어카로 폐지 주우며 개선안 찾고
공유주차장·점자교육 아이디어 공유
언론은 대개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한다. 상황에 직접 뛰어드는 것보단 그 편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키기 수월해서다. 언론은 그동안 바깥에서 관찰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해왔고 이 같은 특수한 위치는 일종의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그 관습을 넘어서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바로 강원일보의 ‘리빙랩 저널리즘’이다. 리빙랩 저널리즘은 관찰하는 보도를 넘어 취재원과 함께 실험하며 사회 문제의 해답을 찾는 저널리즘이다.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실험에 참여하는 ‘리빙랩(Living Lab·생활실험실)’이란 개념에 착안, 강원일보가 새롭게 명칭을 만들었다.
강원일보는 지난해 11월, 춘천사회혁신센터가 다양한 사회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이 같은 시도를 생각해냈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행정과 주민은 물론 언론까지 가세해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한 최기영 강원일보 기자는 “지난해 이런 실험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돼 동참하게 됐다”며 “실험이 진행되는 과정을 취재하는 건 당연하고 기자들이 직접 의견도 내고 과정에 참여하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향후 5년 안에 저희가 쓰는 기사의 80%는 AI가 대체할 수 있을 거라 보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 건 뭘까 생각해보니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거였다”고 말했다.
강원일보는 이 같은 취지를 바탕으로 춘천사회혁신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여러 실험 중 3가지 주제를 선정했다. 바로 ‘리어카 프로젝트’, ‘골목 공유주차장 프로젝트’, ‘점자실험’이다. 강원일보는 이들 프로젝트를 ‘일상에서 답을 찾는 골목 실험실’이란 이름으로 묶고,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자는 취지에서 취재 기자를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으로 다양하게 꾸렸다.
실험은 올 초부터 각기 다른 속도로 진행됐다. 리어카 프로젝트의 경우 폐지를 줍는 어르신과 기자가 동행해 여러 문제점을 체감하고 보고서를 작성, 이를 토대로 새로운 리어카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실험에 참여한 김준겸 강원일보 기자는 “지난 1월12일 3~4시간 리어카를 끌어보고 현장에서 느꼈던 점을 정리해 한국폴리텍Ⅲ대학에 전달했다”며 “이를 토대로 교수님들이 새 리어카의 프로토타입을 거의 완성했고, 자원순환활동가 분들에게 드리기 전 실험을 할 계획이다. 이 피드백을 바탕으로 수정을 거친 후 리어카를 전달 드리는 것이 마지막 기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점자실험 역시 막바지 단계다. 점자실험은 시각장애인 6명과 시민 14명이 점자 교육을 받고, 한 달여간 춘천 시내 곳곳을 다니며 점자 오류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실험에도 참여한 김준겸 기자는 “저도 함께 교육을 받으며 감각을 익히려 노력했는데, 점자를 떼진 않았지만 가만히 지켜보는 것보다 시각장애인 분들과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이번에 수집한 데이터베이스는 춘천사회혁신센터에 전달해놓은 상태고, 이 DB를 바탕으로 어떻게 더 안전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난항이 예상됐던 골목 공유주차장 프로젝트는 예상과 달리 성공리에 마무리된 후 실험 일정을 올 연말까지 늘린 상태다. 주차장 프로젝트는 만성적인 주차난에 시달리는 춘천 후평1동 골목에서 시청 행정복지센터와 지역 주민, 상인들이 함께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실험에 참여한 김현아 강원일보 기자는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원룸 건물주 분들이 낮 시간대 비어있는 주차장을 개방해주셨고, 덕분에 8개 주차면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단톡방을 만들어 사장님들 민원을 계속 받았는데 만족스러우셨던 것 같다. 5월31일자로 실험이 끝난 후, 흔쾌히 연장을 해주셔서 연말까지 실험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낯설던 초기, 취재와 참여 사이 혼동을 느꼈던 기자들은 실험이 진행될수록 온전한 팀원이 되며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일감을 받았다. 김현아 기자는 “주민 분들과 계속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저도 후평동 주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처음엔 관찰자 입장이었다면 회의에 가면 갈수록 아이디어를 더 내게 되고 나중에 가서는 설문조사 정리까지 제가 하겠다고 나섰다. 실험 막바지엔 연장이 안 될까 걱정하고, 연장됐을 땐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더라”고 전했다.
긍정적 반응을 바탕으로 강원일보는 올 하반기 직접 사회 실험 아이디어를 내고 더 다양한 기자들이 참여토록 할 예정이다. 상반기 진행됐던 실험의 경우 기자들이 주민들 실험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면 하반기엔 좀 더 주체적으로 실험을 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기영 기자는 “지역 언론이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해 기자들이 직접 하반기에 실험을 해볼 생각”이라며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리빙랩 저널리즘이 지속 가능한 저희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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