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 도심 한복판에 ‘팔룡산’이라는 야산이 있다. 주거지와 가깝고 작은 산책로와 공원도 있어 지역민들이 즐겨 찾는다. 서울로 치면, 남산과 비슷한 곳이다. 그런데 올해 초까지만 해도 숲으로 울창했던 이곳이 갑자기 민둥산이 됐다. 산비탈에 있던 나무 수백 그루가 잘려, 텅 비어버린 것이다. 벌목 규모만 어림잡아 1만5000여㎡! 주민들은 당황했지만, 누구도 수상한 벌목 공사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취재진은 곧바로 취재에 나섰고,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 조성을 위한 공사를 벌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사격장은 보통 안전과 보안을 이유로 인적이 드문 산속에 마련된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말 그대로,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 반경 2km 안으로 10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 5곳과 학교 2곳이 있었고, 버스터미널과 상점, 공장은 더 가까이 있었다. 취재진이 한 아파트 거실에서 창문을 열었더니, 공사 현장이 그대로 보였다.
2년 전, 경북 영천의 한 주거지에 도비탄이 날아들었는데, 이때 사격장과의 거리가 2km였다.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이 중요한 사실을 관할 자치단체와 한 차례도 상의하지 않았다. 자치단체도, 시민도 모르게 말 그대로 ‘비밀리에’ 사격장을 조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방부는 주한미군지위협정, SOFA에 따라 자치단체 협의가 의무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취재 결과 이는 궁색한 변명에 불과했다. 2001년 개정된 양해 사항을 적용하면, 협의 여지는 충분했다.
시민과 공공 안전과 관련한 사안이다. 사격장의 군사 목적을 인정하더라도, 최소한의 정보는 시민에게 마땅히 제공돼야만 했다. 취재진은 시민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군사 보안을 이유로 공개해서는 안 되는 정보를 제외하고 사격장 연속 보도를 했다. 시민 반발과 우려가 커졌고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뒤늦게 공사를 잠정 중단했다. 안전 등 주민 우려 사항은 관할 자치단체와 해법을 찾겠다고 했다.
이번 사안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국방부와 주한미군 측은 시민들이 원하는 사격장 폐쇄나 이전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앞으로도 시민 알 권리가 또 침해될 수 있다. 취재진은 사안 종결 때까지 관련 취재를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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