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오르면 소상공인들은 다 망하는 것 아니에요?”
얼마 전 노동 인권 교육을 하러 간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최저임금’에 대해 설명하자 한 학생이 대뜸 반문한 내용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자 “기사를 봤다”고 한다. 최근 최저임금 관련 소식을 전한 뉴스, 그 중에서 소상공인 입장을 드러낸 기사들을 찾아봤다. “최저임금 인상, 소상공인 가게 문 닫으란 소리”, “벼랑 끝 소상공인”, “소상공인 앉아 죽기를 기다리라는 것” 등의 제목이 쉽게 눈에 띈다.
요즘 학생들, 또는 시민들은 어떻게 뉴스를 접하고, 읽을까. 대다수가 스치듯 ‘제목’을 훑어본다. 텍스트 기반으로 정보를 검색하던 시대는 가고 유튜브로 대변되는 ‘동영상’ 검색이 대세가 됐다. 동영상 길이도 점점 압축된다. 그렇다 보니 뉴스 ‘제목’ 혹은 ‘헤드라인’ 중요성이 커졌다. 많은 이들은 제목만으로 뉴스를 소비한다. 언론도 ‘제목’에 공을 들인다. 다만 ‘팩트’를 충실하게 부각하기보다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다. 뉴스 제목이 갈수록 선정적으로 변질되는 이유다.
뉴스 헤드라인이 ‘낚시용’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까. 진짜 문제는 뉴스 제목이 선정적인 것을 넘어 사실을 왜곡시키는 경우다. 국회에서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3조 관련 기사 제목은 ‘파업조장법’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노조법 제3조는 파업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 등을 제한하는 규정인데, 개정안의 골자는 그동안 법의 미비점 때문에 제한됐던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정상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노조법상 존재하는 여러 절차 규정으로 노동자들이 합법적 ‘파업권’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잘못된 법 일부를 바로잡았다고 갑자기 파업이 난무할 리도 없다.
경찰이 특진까지 내걸고 토끼몰이식으로 건설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남발했던 사안에 대해 한 언론이 보도한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돈 뜯고 협박…경찰 ‘건폭’ 1484명 입건>. 건설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조직 폭력배의 범법 행위’라는 부당한 프레임이 덧씌워진 것도 모자라 실제로 이들이 수사결과 범죄자임이 확인된 양 명시한 제목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묻지마식’ 무리한 표적 수사가 횡행했고 억울하게 범죄자로 낙인찍힌 조합원이 대다수였다. 노조법이 왜 존재하는지, 노조는 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지 그 근거조차 모르는 수사관들 앞에서 조합원의 법률 대리인은 “헌법상 노동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부터 꺼내야 했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최저임금’처럼 매년 반복되는 노동 이슈에 대해서는 더더욱 기사의 제목, ‘헤드라인’이 곧 뉴스가 된다. 독자로서는 굳이 기사 내용까지 전부 읽지 않더라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로 받아들인다. 노동계는 먹고살 만 한데도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생떼를 부리는 집단, 경영계는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 사정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위협받는 집단임이 기사 제목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건설노조 조합원은 ‘건설폭력배’로, ‘노조법 3조’는 ‘파업을 조장하는 악법’으로, 최저임금 인상안은 ‘소상공인을 다 죽이는 조치’라는 것이 제목만 읽은 이들에게 ‘팩트’로 각인된다. 때로는 단 한 줄의 헤드라인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고, 아무런 근거없이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 클릭률만 높이면 된다는 생각에 ‘아니면 말고’ 식 제목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결과가 무엇인지 언론 스스로 짚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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