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 엄지손톱만한 크기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달 개막한 고대 토우(土偶·흙으로 만든 사람이나 동물 상) 장식 토기 특별전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한 유물은 아주 작은 흙덩이 조각 1점이다. 고개를 내밀어 들여다봐야만 형체가 보인다. 천을 덮은 시신 곁에 머물며 망자의 마지막을 지키는 한 사람…. ‘죽음의 순간을 지키는 사람 토우’란 이름의 이 유물은 1926년 경북 경주시 황남동 유적에서 조각난 채로 출토된 셀 수 없이 많은 토우와 토기 파편들 중 하나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조그마한 토우에 돋보기를 들이댄 여자가 있다. 최초의 여성 학예연구사, 최초의 여성 학예연구관, 최초의 여성 박물관장. 1957년부터 국립박물관에서 일하며 최초의 기록을 썼던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89)이다. 그는 1970년대 학계에서 미지의 영역이었던 토우를 조명한 최초의 학자로 통한다. 그는 “여전히 국보 성덕대왕신종보다 토우를 더 사랑한다”고 한다.
그가 처음 토우와 연을 맺은 건 1967년. 국립경주박물관의 유물관리 담당자가 됐을 때다. 이 전 관장은 최근 전화인터뷰에서 “발굴 현장에 나가면 여자라 방 한 칸 더 차지하고 별 도움은 못 된단 이유로 유물을 관리하는 창고지기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차별 때문에 오게 된 자리였지만, 그는 그곳에서 “평생을 들여다볼 유물을 찾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유물이 토우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경주는 땅만 팠다 하면 금제 장신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다들 토우가 창고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토우를 택했다”고 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으니, 내가 최초”라는 이유였다.
토우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새로운 사실이 보였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인간, 춤을 추는 인간, 미소 짓는 인간까지. 보잘것없는 흙덩이에 인간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이 전 관장은 “그때부터 이 작은 토우들이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4, 5세기 생활상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고 했다. 1976년 연구 성과를 모아 ‘신라의 토우’(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펴냈다. 1993년 이 전 관장이 퇴임한 이후인 1997년 경주박물관은 국·사립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토우 350여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신라 토우전’을 열었다. 토우가 주인공인 최초의 전시였다.
그 덕에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던 토우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복원성과도 뒤따랐다. 2015년부터 올해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경주 황남동 출토 토우와 토기의 파편을 복원한 결과 97점이 제자리를 찾았다. 서로 다른 모양의 토우 조각이 지름 10㎝ 크기 토기 뚜껑 위에 옹기종기 모이자, 새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둥근 원을 그리며 한자리에 모인 이들이 망자를 떠나보내는 ‘헤어짐의 축제’가 토기 위에 펼쳐진 것. 별개의 장식이라고 여겨왔던 토우가 알고 보니 애도 의식을 상징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번에 주최한 토우 전시는 그간의 복원성과를 처음 공개한 자리다. 유물에 담긴 따뜻한 마음 때문일까. 2030세대가 전시에 열광하고 있다. 구순을 앞둔 이 전 관장에게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렸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난 이제 몸이 아파서 전시에 가볼 수 없는데, 참 다행이에요. 토우를 사랑해주는 젊은이들이 있어서.” 전화 너머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또랑또랑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토우가 사랑받길 바랐던 그 옛날 창고지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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