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은 끝났지만, 피해 주민들의 고단한 일상은 시작일 뿐이다.”
지난 4월12일자 강원일보 1면 강릉 경포 산불 기사 마지막 문장이다. 스트레이트는 사실만 담아야 하지만 이날은 절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나지막한 탄식이 나왔다.
탄식이 나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기존 대형 산불 이재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집과 직장을 잃고 정부 지원금·성금과 빚으로 일어서야 하는 고통, 바다와 산을 끼고 평화롭게 지내던 이웃이 피해 정도와 보상 문제 등으로 갈라지는 갈등, 수년이 지나도 불안·우울이 여전한 마음의 상처가 떠올랐다. 경제부와 사회부에서 각각 취재했던 2019년 고성 산불 피해 소상공인, 2022년 동해안 산불 이재민들이 그랬다. ‘이번에는 경포 주민들이구나…’ 싶었다.
다른 이유는 무력감이었다. 지난해 3월 동해안 산불 발생 직후, 10회 분량의 기획 기사로 산불 예방책의 취약점, 개선 방향을 다뤘다. 대표적인 예방책이 초대형 헬기였다. 하지만 경포 산불 발생 당시,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30m인 태풍급 강풍에 초대형 헬기도 뜰 수 없었다. 예방책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난 관리가 ‘예방→대비→대응→복구’로 이어지는 4단계라면 이번에는 복구책을 살펴보기로 했다. 이재민의 일상이 복구 되는 과정이 궁금해졌다. 컷 제목에는 복구 대신 회복을 넣어 “산불 이재민의 일상 회복을 돕자”로 했다.
경포 산불 발생 직후 초기에는 이재민들의 충격이 커 인터뷰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산불 복구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뭘 요구해야 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기존 대형 산불 이재민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2019년 고성 산불, 2019년·2022년 강릉 옥계 산불 이재민들을 찾아갔다. 이들은 현행 산불 복구책의 많은 문제점을 알려주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근거한 복구책이 주택 위주여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사업장 피해)’은 소외된 점, 24㎡(7평) 남짓한 임시조립주택은 세대원이 4명 이상일 경우에만 1동을 추가로 받을 수 있어 열악하다는 점을 말했다(실제로 확인한 내부는 성인 2명이 살기도 어려워 보였다). 강릉 옥계면 남양2리 이장은 “어르신들의 트라우마가 심하다”고 했다. 기존 이재민들은 국민 성금은 액수를 떠나 큰 위로가 됐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들을 하나하나 기사로 만들어 4월17일부터 같은 달 28일까지 7회 분량으로 보도했다. 기획은 닫지 않았다.
산불 발생 한 달째가 될 무렵, 아직도 정부 복구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음을 8회 기사로 다뤘다. 경포 산불 이재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5월18일부터 사무실로 7평 컨테이너를 열었다. 주택 피해자, 사업장(주로 펜션) 피해자, 피해 정도(전파, 반파, 소파)별로 소그룹 회의가 매일 이어진다. 이 안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9회 기사로는 세입자 이재민들의 소외감, 막막함을 다뤘다. 10회 기사로는 이번 경포 산불의 최악의 사각지대로 남을 ‘소파 피해 이재민’들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넓은 임야, 농촌 주택이 피해를 입는 대형 산불과 비교하면 2019년 고성·속초, 2023년 경포와 같은 ‘도시형 산불’의 복구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다.
2019년, 2022년 대형산불 피해를 입은 강릉 옥계면 남양2리 이장은 두 번째 인터뷰 때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뒷산으로 데려갔다. 밑동만 남은 밤나무, 이제 겨우 자라기 시작한 엄나무를 보여주고 “주민 소득원을 잃었는데 앞으로 3년은 더 있어야 한다. 이걸 누가 알아주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마을 경로당은 지난해 정부 고위 관료들도 다녀갔다. 경로당이 아니라 뒷산을 봤더라면 복구 대책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최근 2019년 고성 산불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언론의 관심이 정부의 관심을 만들더라”고 말했다. 모든 이슈가 그렇지만 사회 재난 문제에서 언론 역할은 크다. 강원도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재민들에 대한 관심은 지역 언론의 당연한 역할인데, 부족하지만 충실하겠다고 지면을 빌려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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