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DMZ의 영혼 깊숙한 곳으로 이끈 것은 두루미였다. 철원평야에서 처음 두루미와 눈이 마주친 전율을 잊을 수 없다. 한없이 시리고 맑은 철원의 하늘을 아름다운 날갯짓으로 날아오르던 ‘천상의 새’ 두루미에 홀려 지난 15년간 DMZ 일원을 걷고 또 걸었다. 박경만 전 한겨레 선임기자 이야기다.
그가 최근 <두루미의 땅, DMZ를 걷다>를 펴냈다. 우리나라 서쪽 끝 백령도 두무진에서 시작해 연평도, 인천·강화 앞바다의 작은 섬들, 한강하구, 임진강, 한탄강, 강원도 고성 화진포에 이르는 500km를 걸으며 만난 DMZ의 역사와 생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책에 풀어냈다.
“경기도 북부지역 담당 기자로 15년을 일하며 자연스럽게 DMZ 일원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내가 가진 두 개의 무기, 펜과 카메라로 부활의 땅으로 거듭나고 있는 DMZ의 생태·평화적 가치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DMZ는 비무장 지대(demilitarized zone)라는 이름과 달리 수많은 지뢰와 가시 철책, 초병들의 총구가 선연한,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계지역이다. 그의 표현을 옮기면 “DMZ는 지난 70년간 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호 속에 갇혀 버린 ‘괄호 쳐진 땅’이자 타의에 의해 강제된 비극적 근현대사의 압축파일”이다.
그는 “경계를 걷는 일은 해묵은 분단의 상처를 응시하고 어루만지는 일”이라고 책 첫 문장에 썼다. DMZ 전체를 △서해 최북단 섬과 한강하구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 △강원도와 동해안 등 3개 지역으로 나눠 DMZ 접경의 생태와 역사, 그곳에서 물고기를 잡고 씨를 뿌리는 사람들의 선량한 목소리를 주저리주저리 전한다.
그동안 그는 DMZ에 대한 다양한 탐사기록을 남겼다. 2019년 한겨레에 ‘DMZ 현장보고서’를 8회 연재하는 등 DMZ 관련 기사를 수백 편 넘게 썼고, 2021년에는 ‘DMZ 접경지역의 지속가능한 생태평화관광’이라는 논문으로 경기대 관광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DMZ에서 만난 순수한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사로잡혀 이번엔 책까지 썼다. 그는 “척박한 땅을 옥토로 바꿔놓은 농부와 임진강 어부를 비롯해 두루미 등 DMZ 일원에 깃들어 사는 모든 것들이 나의 친구이자 스승”이라고 했다.
길을 걷는 걸 좋아해 백두대간을 종주했고 전국 국립공원도 돌았다. 지금은 100대 명산을 오르고 있다. 북미대륙, 히말라야 등도 다녀왔다. 여행의 동반자인 카메라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자연을 찍은 사진을 모아 전시회도 열었다. 2018년 5월 사진에세이 <바람의 애드리브>를 펴냈으며, 2019년 6월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부친 서예전에 자연풍경을 담은 사진 25점을 보태 부자 전시회를 가졌다. <두루미의 땅, DMZ를 걷다>에 실린 사진 120점을 모은 ‘DMZ 사진전’은 경기도 파주와 고양에 이어 6월부터 경기도 연천, 강원도 철원과 고성에서 순회 전시를 추진 중이다.
DMZ 현장 곳곳을 탐사했던 지난 15년이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그래도 아쉬움은 진하게 남는다. 철책을 지키는 젊은 병사들 이야기를 많이 담지 못했고, 무엇보다 북쪽 DMZ에 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1988년 무등일보에서 시작해 광주매일을 거쳐 1993년부터 한겨레에서 일한 그는 35년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4월 말, 퇴임식에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위무위 사무사(爲無爲 事無事)’라는 구절을 인용해 퇴임 심경을 밝혔다.
그 뜻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무위의 방식을 행하며 일거리를 없애는 태도로 일하라는 뜻입니다. 풀어 말하면 ‘필요없는 일을 하지 말고, 일삼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라’는 뜻이죠. 남은 삶을 그렇게 살고 싶네요.”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