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말끝이 흐리다.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축구 게임만 하는 아이다. 하지만 11살 나이에 너무 일찍 현실을 알아버렸다. 자신은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손흥민처럼 한국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웬디군은 경기도 안산 매화초등학교 6학년 씨름 선수다. 학교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씨름을 시작했고 지난 2년 간 7차례 대회에 나가 4차례 우승했다. 이기는 재미가 쌓이며 점점 씨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씨름부가 있는 중학교 진학도 생각했다. 그런데 벽이 있었다. 콩고 민주공화국 출신 그의 부모는 2010년 한국에 왔고, 2018년 난민 인정을 받았으나 아직 국적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거리낌 없이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김군 또한 현재 ‘무국적자’다.
김웬디군은 울산광역시에서 27일 시작된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전국체전 참가 자격이 ‘대한민국 국민’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대한씨름협회에서 진행하는 대회는 출전이 가능하지만 대한체육회 주최 대회는 불가능하다. 장차 씨름 선수가 될 수 없다는 현실에 요즘은 축구로 종목을 바꿔볼까도 생각 중이지만 축구 선수 또한 국내에서는 난민 2세 신분인 김웬디군에게 쉽지 않은 길이다. 한국 체육계는 이주 청소년들에게 아주 배타적이다. 대한체육회가 지난 4월 전국 17개 시·도체육회와 49개 회원종목단체를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외국인 선수 참가를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안건에 응답한 총 32개 단체 중 절반이 넘는 21곳(65.6%)이 반대의 뜻을 전했다. 반대의 이유로는 “전국체전의 전통과 상징성이 떨어진다”(서울시체육회) 같은 원론적 입장도 있었지만 “무분별한 외국인 선수 영입으로 시·도 간 경쟁 과다 예상되고 국내 선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대구시체육회)라거나 “전국체전 성적이 학생 선수에게는 상급학교 진학에 쓰이고, 실업팀 선수에게는 계약 및 연봉 등에 반영된다”(대한검도회) 등 현실적 이유가 다수였다.
학생 선수, 부모로서는 대회 성적이 곧 입시, 취직에 반영되는 현실에서 운동 신경 좋은(이 또한 편견일 수 있지만) 경쟁자의 출현이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육상, 탁구 등 일부 체육 단체에서 국제 대회 성적 향상을 위해 성인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 국적 변경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모순적이기도 하다. 작년 전국체전 운영 평가회 때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묵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웬디군의 휴대폰에는 한글로 ‘울엄마’라고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다. 가림막을 치고 말소리만 들으면 영락없는 한국 10대 청소년이다. 태어나서 한국 밖으로는 나간 적이 없는데도 그는 한국 체육계에서 그저 얼굴색이 다른 ‘외국인’일 뿐이다. 타고난 운동 신경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스포츠 선수나 지도자 꿈을 꿀 수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팬’에서 요정 팅커벨은 웬디를 꿈의 나라, 네버랜드로 이끌어 준다. 현실 세계의 웬디에게 팅커벨은 진짜 없는 것일까. 2024년 1월 강원도에서 열리는 겨울청소년올림픽 슬로건은 ‘Grow Together, Shine Forever’(함께할 때 빛나는 우리)다. ‘함께’라는 공존의 언어는 그저 글자로만 존재하는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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