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들이 취재현장이나 조직에서 겪는 트라우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공개됐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가 구성한 ‘언론인 트라우마 위원회’는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다트센터와 공동으로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언론인 트라우마 가이드북1.0’ 발표회를 열었다.
지난 2021년 활동을 시작한 위원회는 그해 11월 현직 언론인 544명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근무 중에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는 응답이 80%에 달했다. 이후 위원회는 안현의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과 언론인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현실적인 트라우마 대응 방안을 논의해왔다.
위원회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은 ‘트라우마 리터러시’를 강조한다. 뉴스룸의 트라우마 이해도를 높이면서 취재·보도 관행과 언론문화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이드라인은 취재·보도 과정을 △사안 인식 △인터뷰 △취재 및 촬영 △기사 작성 및 편집 △보도 △보도 이후 등 6단계로 분류해 단계마다 자세한 방안을 제시한다. 1단계 ‘취재진의 사안 인식’에선 현장기자와 데스크 입장에서 각각 고려해야 할 점을 짚었다. 구체적으로 △취재진도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다는 인식 △기자 스스로 해당 사건 취재에 적합한 지 점검 △현장기자에게 충분한 자율성 부여해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처 등을 담았다.
두 번째 ‘인터뷰 단계’는 트라우마 관점에서 언론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유족·생존자 취재를 다뤘다. 현장에선 유족 취재가 반드시 필요하느냐는 문제제기도 나오지만, 유족·생존자 인터뷰는 정확한 사안을 파악하고 주의를 환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989년 영국 힐즈버러 사건의 생존자이자 재난관리 전문가인 앤 에어 박사는 지난 2월 트라우마 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인터뷰를 시도하는 행위 자체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 트라우마를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인터뷰 방법이 가이드라인에 담겨있다.
다섯 번째 ‘보도’ 단계에선 취재원의 상황이나 감정을 취재진의 판단으로 단정해 보도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유가족들이 슬픔에 빠져 있다’는 관행적인 표현이다. 마지막 단계인 ‘보도 이후’엔 신뢰하는 동료들과 고충을 나누고, 관계적·사회적 지지를 받는 경험이 트라우마를 막을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정애 트라우마 위원장(SBS 미래팀장)은 언론인, 특히 기자가 트라우마 고위험군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국내 언론계에 ‘트라우마’라는 말이 떠올랐고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트라우마 이해 기반 보도’나 ‘언론인 트라우마’에 대한 논의가 시작했다”며 “꼭 참사가 아니라 일상적인 취재에서도 트라우마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스룸에서 트라우마의 영향력은 현장을 직접 경험한 취재진뿐 아니라 동료와 가족, 넓게는 시청자·독자들에게까지 퍼질 수 있다. 언론인 트라우마가 ‘개인’이 아닌 조직, 사회적인 관점에서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위원회는 전문가들의 진단과 제언을 반영해 이달 말 최종 가이드라인을 배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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