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럽처럼 협력하지 못하냐는 말에 대하여

[이슈 인사이드 | 국제·외교] 권희진 MBC 기자

권희진 MBC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국가들이 독일과 화해하고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2차 대전 피해국인 프랑스 같은 국가들도 독일과 잘 지내고 있으니 한일 관계도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해 협력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독일과 비교해 피해국들과의 화해에 극히 소극적인 일본의 문제가 그동안은 주로 지적돼왔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왜 유럽처럼 협력하지 못하느냐’며 일본이 아닌 한국의 태도를 지적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독일이 만약 전후의 일본처럼 행동했더라면 윤 대통령이 말하는 지금의 협력하는 유럽, 통합된 유럽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차 대전 후, 주권을 박탈당한 독일의 최우선 과제는 ‘정상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정상 국가’가 돼야 재무장이든 통일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러려면 독일은 유럽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져야 했고 프랑스나 폴란드 같은 피해국들과의 화해가 중요했다. 1949년까지 연합국의 통치 아래 있던 독일은 지분을 가진 프랑스와의 관계 회복이 필요했다. 피해국들과의 화해는 국운이 달린 일이었다.


미국은 독일이 힘을 키워 유럽 동쪽에서 소련의 팽창을 막아주기를 원했다. 독일이 피해국들의 의심과 경계의 대상으로 남는다면, 독일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했다. 독일의 ‘진정한’ 화해는 미국의 이해와도 일치했다. 화해를 위한 독일의 노력은 단지 국가의 도덕성 문제만은 아니었다.


일본은 달랐다. 전후 일본의 재무장을 봉쇄하려던 미국의 정책은 한국 전쟁을 계기로 일본을 활용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일본의 경제력과 공업기술을 이용해 소련을 견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패전 후 수감됐던 전범들이 석방돼 차례로 정계에 복귀했다. 추방됐던 전범 25만명 이상이 돌아왔다.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와 같은 거물 전범들이 정치적으로 복권됐다. 1952년 10월 미 군정이 끝난 뒤 첫 총선에서 중의원 의석 42%를 이런 사람들이 차지했다. 미국의 이해에 따라 전쟁 주역들이 전후 정치를 장악한 일본이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하기는 어려웠다. 피해국들이 반발해도 일본 정치인들은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이처럼 화해를 위한 토양이 척박하지만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요구한다. 미·중 경쟁이 시작되면서 화해하라는 압박도 본격화됐다. 압박은 피해자인 한국에 주로 가해졌다. 그 결과는 위안부 합의나 강제징용 해법 같은 피해자가 오히려 화해에 매달리는 듯 보이는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지난 방미 기간 윤석열 대통령은 하버드대를 찾아 조지프 나이 교수와 대담했다, 나이 교수는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 국방부 차관보로 일하면서 미국의 아시아안보정책을 바꾼 인물이다. 그는 1995년 일명 ‘나이 보고서’라 불리는 전략보고서에서, 일본을 냉전 후 지역질서 재편의 불가결한 파트너로 정의했다. 그와의 대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관계와 관련해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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