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끝나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 소통 이야기다. 어차피 당선인 때의 말과 대통령이 된 후의 행동이 같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무구한 일이다. 취임 1년을 맞은 윤 대통령뿐 아니라 다수의 지난 대통령들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억한다.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였던 지난해 3월22일, 기자들과 깜짝 티타임을 자청해 이렇게 말했다. 그대로 옮긴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기자실에 자주 갔던 분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두 분인데 5년 임기 동안 100회 이상 가셨다. 1년에 20번 이상, 한 달에 평균 2번 정도 가셨다는 것인데 저도 가급적 우리 기자분들을 자주 뵙겠다.” 그는 또 “취임하면 제가 하루 (날을 잡아서) 구내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양을 많이 끓여서, 같이 한번 먹자”고도 말했다.
일장춘몽이었다. 윤 대통령 측도 할 말은 있을 터다. 지난 정부라고 다를 건 없었다는 말도 하고 싶을 수 있겠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했던 횟수는 약 150회에 달하지만, 소통의 명맥은 거기까지다. 이명박·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 20회를 넘기지 않는다. ‘기자회견’이라는 공식 기준을 충족시킨 횟수로 따지면 문 전 대통령 역시 6번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정권들의 잘못이 현 정권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윤 대통령의 경우,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일부 기간 동안 진행했던 시도는 있었다. 그러나 잇단 설화로 인해 지난해 11월 중단된 후, 도어스테핑 장소였던 대통령실 현관엔 가림막이 대신 자리했다. 국민과의 소통에도 가림막을 친 것과 다름없다. 기자회견 숫자도 뚝 끊겼다. 국무회의 생중계 방식 등으로 소통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소통이라기보다는 일방 통보다. 대화 아닌 일방 전달은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소통이라 정의내릴 수 없다.
당혹스러운 점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그가 대한민국 외의 언론과는 소통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한미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워싱턴포스트(WP)부터 NBC 등 다양한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윤 대통령은 국내에선 특정 매체만을 골라 단 한 번 인터뷰를 했을뿐이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인가 묻고 싶다. 영어로 통역 및 번역되는 과정에서 실수가 나오는 과정을 보도해야 하는 한국 기자들의 심정은 착잡했다. 대통령을 옹호하려다 WP 기자에게 트윗을 통해 전 세계 공개망신을 산 여당의 행태며, 그 과정에서 해당 기자에게 쏟아졌다는 악플 및 악성 이메일의 내용 역시 씁쓸하기 그지없다.
다시 한 번 꺼내본다. 지난해 2월 한국기자협회 주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의 윤석열 후보의 언론 관련 발언이다.
“대통령은 언론에 자주 나와서 기자들로부터 귀찮지만 자주 질문을 받아야 되고 솔직하게 답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에 취임하면 아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 1회 정도씩은 기자들과 기탄 없이 만나도록 하겠다.”
맞다. 기자들을 만나고, 질문세례에 답하는 일은 귀찮은 일이다. 그 귀찮은 일을 잘 해내는 것은 그러나 대통령의 책무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인 미국 대통령들이 당을 막론하고 기자들을 자주 만나고, 기자와 설전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은 그들이 “특별한 일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특별한 일이 있을수록 기자들과의 소통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것이 대통령의 기본 책무다. 아직 4년이 남았다. 슬픈 예감이 이번엔 틀리길 바란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