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이렇게 질문하는 저도 포괄임금제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네요.”
‘포괄임금제’에 대해 취재하고자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가 통화를 마무리하며 건넨 말이다. 20분가량 이 제도에 대한 문답 과정에서 ‘포괄임금제가 정말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정작 본인도 이 제도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자조적인 목소리다.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을 둘러싼 핵심 쟁점 중 하나인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임금 계산 편의를 위해 ‘법’이 아닌 ‘대법원 판례’를 통해 허용되기 시작한 편법적인 제도다. 연장, 휴일 근로 등이 일정 정도 발생한다는 가정 아래 임금에 고정적인 제수당을 포함시켜 지급한다. 문제는 대법원 판례가 정한 도입 요건을 무시한 채 ‘실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건’임에도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업장이 넘쳐 난다는 사실이다. 언론사는 전형적인 포괄임금제 오·남용 사업장이다.
특히 취재, 보도 부문에서 근무하는 기자들의 경우 사업주의 눈을 벗어난 외근이 빈번하고, 개별 근로계약 등에서 정한 ‘소정근로시간’ 이후에도 취재원과 만나는 일이 잦다. 취재를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 적지 않고 주말에 갑자기 발생한 사건 대응을 위해 전화기를 붙잡고 있기 일쑤다. 다수 언론사들이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포괄임금제’를 당연히 채택해왔다. 얼핏 보면 ‘어디까지를 실제 취재(근로)한 시간으로 봐야 할지 애매하다’거나 ‘매번 일일이 근로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도입 배경이 합리적인 듯하다.
그러나 언론사 포괄임금제는 ‘공짜 노동’을 합법화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언제든, 어떤 이유에서든 노동자를 ‘함부로’ 부려 먹어도 괜찮은 업무환경을 구축한다는 점이다. 주말이나 한밤중에 전화를 거는 일이나 카카오톡 등 메신저로 업무와 관련한 지시를 하는 것이 아무런 제재없이 가능해진다. 미리 임금에 일정액의 연장수당을 포함시켜 놨으니, 근무시간을 벗어난 업무 지시에 거리낌이 없어진다. 이러한 관행이 반복되는 가운데 현장의 기자들은 ‘실제 근로시간을 계산해보면 일한 만큼 못 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필자는 마침 정부가 포괄임금제 오·남용 사업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으니 이 기회에 대대적으로 이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기대했다.
그런데도 언론사들은 섣불리 이 제도에 손을 못(안) 대고 있다. 왜 그럴까. 이 제도는 처음부터 ‘사용자의’ 임금 계산 편의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포괄임금제가 도입되는 순간부터 실제 일한 시간을 일일이 기록하거나 그에 따른 임금을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주 최장 52시간 제도가 시행된 이후 ‘계산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실제 근로시간을 ‘기록하지 말라’는 지침도 난무했다. ‘실 근로시간’으로 보기 애매한 노동 시간에 대한 기준도 없다보니 노사 합의 등을 통해 이를 교통 정리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런 사정들을 종합하면 사용자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도입한 이 제도를 정상적으로 돌려놓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그 저항감이 생각보다 컸다.
분명한 것은 포괄임금제를 적용한 언론사에서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미 예정된 연장근로를 넘어선 아무 때나 ‘닥치고 노동’을 합법화한다는 점이다. ‘기록’과 ‘입증’이 실종된 임금 제도 아래에서 노동자들은 무력하기 마련하다. 어느 면으로 봐도 이 제도는 ‘단속’이 아닌 ‘금지’가 답이다. 이제부터라도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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