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서 모기업의 YTN 지분 인수 추진이 뉴스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는 지난 18일 발행한 노보에서 모기업인 동화기업이 YTN 인수전에 뛰어든 이후 한국일보 뉴스룸에 정부 비판을 제한하는 분위기가 퍼졌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지부는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는 발제 단계에서부터 압박이 들어오고 우여곡절 끝에 출고가 되더라도 온라인 제목을 수정하라는 지시에 시달린다. 지면에 실리지 않거나 기사가 축소·굴절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기자들 사이에선 적어도 당분간은 현 정부와 각을 세우는 기획이나 기사를 쓰기 힘들어진 게 아니냐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노조 “발제 단계부터 압박… 어렵게 출고돼도 제목 바꾸라 지시”
한국일보지부가 구체적인 사례로 든 기사는 지난달 22일자 <[단독] 도이치 3억 매수자 기소했지만 40억대 김건희 여사 처분 못 한 이유는>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약식기소된 5명의 공소장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김건희 여사보다 훨씬 적은 주식을 사들였는데도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의 출고 예정일은 지난달 17일이었다. 그러다 21일로 연기됐다가 한 차례 더 미뤄져 23일로 결정됐다. 그러나 기사를 작성한 법조팀이 ‘23일엔 피고인들의 첫 공판이 열려 주요 혐의가 공개되기 때문에 그 전에 실려야 한다’고 항의해 22일자 신문에 실렸다. 한국일보지부 노보에 따르면, 담당기자가 전해 들은 출고 지연 이유는 △보도 시점이 대통령 내외의 일본 방문 기간(3월16~17일)과 겹치고 △한국일보가 주최한 부산엑스포 유치 기원 음악회에 김건희 여사를 초청(3월23일)해야 해서였다.
우여곡절 끝에 해당 기사는 출고 승인을 받았으나 분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채 지면에 실렸다. 제목에선 기사의 핵심인 ‘김건희 여사’ 이름이 빠졌다. 한국일보지부는 “김 여사에 유리한 부분 위주로 재구성돼 기사의 뉘앙스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결국 법조팀의 항의로 최종판 지면엔 원안대로 기사가 실렸지만, 제목은 김 여사가 빠진 <검찰,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가담·방조’ 기준으로 기소>로 나갔다.
편집국장 "누구 눈치보는게 아니라, 여러 측면서 융통성 발휘한 것"
정진황 한국일보 뉴스룸국장은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현장기자들이 찾아낸 팩트를 깔아뭉갤 국장은 없을 것”이라며 “누구 눈치를 봐서 그렇다기보다는 기자들이 생각하는 기대치나 비판의 수준이 (국장과) 다른 측면이 있다. 여러 면에서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국장의 해명에도 이 같은 사례는 뉴스룸 분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한국일보지부는 노보에서 “이런 일들이 전파되고 누적되면서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가이드라인을 형성한다.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은 취재 단계부터 주저하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일보의 한 취재기자는 기자협회보에 “정부 비판 기사에 힘이 빠지고 있다는 점은 지난해 YTN 인수 얘기 나오기 시작하기 전후부터 많이들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취재기자는 “기사가 수정되는 과정, 제목, 지면 배치, 편집의 방향성에서 달라진 기류를 체감하고 있다. 일선 기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될 수 있다”며 “부서마다 민감도가 다르고 세세하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부정적인 영향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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