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에 '기후 청구서' 내민 미국… 돈만 쓰고 폼 안나면 어쩌나

[구정은의 세계를 보는 눈]
(2) '기후동맹' 요구하는 바이든 미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새 계획을 발표하면서 총 15억달러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에너지 및 기후에 관한 주요 경제국 포럼(MEF)’ 참가국 정상들과 화상회의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브라질의 아마존 숲이 더 베어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5년간 5억달러 기금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개발도상국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유엔 녹색기후기금(GCF)에 1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마존 기금에 미국이 돈을 붓겠다고 하니 브라질은 당연히 환영했죠. 브라질의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러시아와 중국 편을 드는 듯한 모습을 보여 미국이 격앙됐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아마존 문제에선 바이든 정부와 룰라 정부의 입장이 일치합니다. 브라질은 바이든 정부가 내세우는 기후대응 리더십의 중요한 파트너이고, 룰라는 취임 뒤 미국을 방문해 이미 아마존 기금 기부 약속을 받아낸 바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에너지 및 기후에 관한 주요 경제국 포럼(MEF)’ 참가국 정상들과 화상회의를 가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새 계획을 발표하면서 총 15억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AP 뉴시스


MEF 회의는 2009년 만들어진 협의체입니다. 그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스타로 부상했던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주도해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오바마 정부의 기후대응 성적표는 좋지 않았고, 후임인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아예 탈퇴해버렸지요. 바이든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하면서 기후 정상회의를 연달아 열었습니다. MEF 회의만 해도 바이든 대통령 취임 뒤 벌써 네 번째입니다.

바이든, MEF서 15억불 지원 약속… 공화당 반대, 타국에 부담 넘길듯

이 협의체에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캐나다, 칠레, 중국, 이집트,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영국 등 26개국이 참가하는데 한국도 물론 들어가 있습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탄소배출국이니 참석하는 게 당연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 영상으로 참석해 ‘국제사회와의 연대’와 ‘기술혁신 가속화’를 다짐했습니다. “이제 기후위기는 전 세계 공통 언어”라면서 “즉각적인 기후행동”을 강조했습니다. 국제사회에 약속한대로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일 것이라면서 ‘원전·수소와 같은 무탄소전원’ 비중을 높이고 탄소포집기술(CCUS), 무공해차와 녹색해운 등등 기술혁신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체로 백악관 이니셔티브에 제시된 것들을 되풀이한 것이었고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던 듯합니다. 외국만 나가면, 외신만 만나면 시끄러운 소동을 만들어내다 못해 나라를 전쟁통으로 몰고가는 윤 대통령인데 기후대응 발언으로는 안팎에서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걸 보면요.


몇몇 국내 언론들은 윤 대통령 발언 내용을 소개하면서 공적개발원조(ODA)를 늘려 국제사회의 기후대응에 동참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관심을 끕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언을 했지만 미국이 지구를 위해 돈을 낼지는 사실 알 수 없거든요. 공화당 의원이 더 많은 하원에선 기후예산을 늘려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죠. MEF 회의 전날에도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바이든의 기후 의제들을 거세게 공격하고 청정에너지 이니셔티브 같은 중요한 프로그램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개최한 ‘에너지 및 기후에 관한 주요 경제국 포럼(MEF)’에 영상으로 참석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이제 기후위기는 전 세계 공통 언어”라면서 “즉각적인 기후행동”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제공


바이든 정부의 목표는 내년까지 개도국들의 기후대응을 돕는 연간 지원예산을 연간 110억달러로 늘리는 것인데 공화당이 계속 발목을 잡을 게 뻔합니다. 지난해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참가국들이 기후대응과 ‘기후 정의’를 위해 ‘손실과 피해 기금(loss and damage fund)’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미 공화당 의원들은 대놓고 반대했습니다. 이달 중순 열린 세계은행 회의에서 바이든 정부 기후특사 존 케리는 “현 의회에서 예산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의회를 우회하기 위해 모금 캠페인까지 생각하고 있다는데, 얼마나 모일지는 알 수 없고요.


그럼 돈을 내는 부담은 누가 많이 지게 될까요. 올해 기후총회를 주최하게 될 아랍에미리트(UAE)가 큰 몫을 떠맡을 것 같습니다. 바이든이 약속하고, 공화당이 반대하고, 다른 나라에 부담이 넘어가는 거죠. 물론 UAE는 낼만 하니까 내는 겁니다. 화석연료를 팔아 돈을 벌어왔고, 그 돈으로 에너지 전환에 투자하면서 그린 드라이브를 걸고 있죠. 미국 곁에서 돈을 더 내주고,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높일 생각을 하고 있겠지요.

기후 대응, 사회적 논의 거친 공감대 확산 선행돼야

바이든 대통령이 아마존 기금 외에 10억달러를 내겠다고 한 녹색기후기금(GCF), 한동안 존재조차 잊고 있었네요. 인천에 본부가 있는 유엔기구입니다. 녹색 성장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 때 이 기금을 유치했다고 자랑을 많이 했었죠.


2010년 설립됐는데 우리 기억에서 밀려난 것에서 보이듯 성과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2015년 3월 한국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이 기금은 화석연료 감축을 명시하는 것에 반대함으로써 회원국들이 석탄발전소에 자금을 지원하는 걸 허용해서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금 규모는 더 초라합니다. 2020년까지 연간 1000억달러를 모금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고위급 자문그룹까지 설치했습니다만, 2020년 기준으로 각국이 낸다고 약속한 돈 총액이 103억달러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기여가 ‘확정’된 돈은 그중 82억달러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시절 이 기금에 30억달러를 낸다고 했는데 5억달러만 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퇴임 사흘 전 5억달러를 추가로 납부해서, 합하면 총 10억달러. 20억달러는 말만 해놓고 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이 거액 기부인 양 생색을 냈지만 오바마 시절의 미납액 절반을 내겠다 한 것일 뿐입니다. 어쨌든 낸다니 반갑긴 합니다만 한국인 사무총장 때 만들어 한국에 유치한 기금이니 나몰라라 할 수는 없겠죠. 필시 한국도 기여를 늘려야 할 겁니다. 백악관은 MEF 회의에 맞춰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다자개발은행’들을 통해 글로벌 기후재정을 충당하는 방안도 거론했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 회의가 다음달 초 한국에서 열리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년 만에 일본의 카운터파트를 만난다고 보도됐던데 이 회의에서 기후대응 자금이나 기여분도 논의될지 궁금합니다.

구정은 국제전문 저널리스트

마지못해 응답하는 식으론 곤란… 우리도 협력 채비 필요하지 않을까

백악관 성명은 또한 “파리협약 목표치에 부합하지 않는 나라들이 올 11월 두바이 기후총회까지 목표를 강화하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이 제시한 정책들은 ‘1.5도 목표치’에 맞추기엔 부족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백악관은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경상용차의 50% 이상과 중형 및 대형 차량(MHDV)의 최소 30%가 무공해 차량이 되도록 하는 공동 목표에 동참할 지도자들’을 대화 상대로 설정해놨다고 하는데, 한국은 2021년 기후총회 때 주최국 영국이 주도했던 ‘무공해차 전환 선언’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MEF 회의에서 윤 대통령도 무공해차를 언급했는데, ‘미국발’ 기후대응 요구에 어떻게 응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겁니다.


백악관이 회의를 열던 날, 미 국방부도 성명을 내놨습니다. 2021년 기후정상회의 때 미 국방부는 한국을 비롯해 호주,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 등 6개 동맹국을 향해서 ‘국방부 기후평가도구(DCAT)’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20일 성명은 그것이 만들어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방 분야의 맞춤형 평가도구를 동맹국과 공유하면 안보 협력과 상호 운용성을 촉진할 수 있다면서 “기후 영향에 더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국가와 동맹이 경쟁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이 기후대응 능력을 키울 도구를 만들어 선물해주는 것이라는 듯이 설명하지만, 동맹국과의 기후안보 협력이 중요하다는 코멘트를 보면 우리도 채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어느 때보다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정부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우리도 당연히 기후대응을 강화해야 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이자 발전된 나라로서 책무를 이행해야만 합니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고 온실가스도 많이 내뿜으니 개도국들을 도울 돈도 더 내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끌어올리면서 국제사회의 대응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미국 눈치 때문에 돈만 내놓고 폼은 안 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깁니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공감대를 확산시키면서 해야 할 일인데, 미국이 청구서처럼 들이미는 요구에 마지못해 응답하는 식으로 이뤄져선 안 되잖아요. 바이든 정부의 녹색 드라이브를 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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