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날을 떠올리고 추모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혹 무심코 지나쳤다 해도 4월의 어느 하루쯤은 먹먹한 가슴으로 그날의 바다를 떠올리곤 하겠죠.
그해 4월, 저도 진도 팽목항에 있었습니다. 참사 후 1주일쯤이 지나서였죠. 미디어 전문지 기자인 제가 할 일은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는 기자들을 취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취재’ 중인 기자들은 없었습니다. 참사 당일 ‘전원 구조’ 오보로 시작해 병원에서, 학교 앞에서 볼썽사나운 취재 경쟁으로 비난을 산 언론(인)은 이미 죄인으로 낙인찍힌 터였습니다. 기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주위를 서성이며 묵묵히 보고 듣고 기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언론에 대한 불신과 냉대가 가득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그곳을 선뜻 떠나지도 못한 채, 마치 속죄하듯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디고 있던 기자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매년 4월이면 우리는 구태여 그날의 기억을 불러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그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세월호 관련한 추모 행사와 공간의 이름이 ‘기억식’ ‘기억공간’ 등으로 명명된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기억하려는 의지가 약해진 탓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매년 4월1~16일 보도된 ‘세월호’ 기사를 검색해봤습니다. 참사 1주기였던 2015년 8000건이 넘던 보도는 이듬해 확 줄었다가 세월호 선체가 인양된 2017년에 다시 크게 늘더니 이후로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올해는 548건만이 보도됐네요. 대통령도 별도의 추모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 자체를 나무랄 수야 없지만, 세월호 참사를 교훈 삼아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우리의 다짐이 덩달아 희미해지는 것 아닌지 걱정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해 10월29일,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도 아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159명의 생명을 떠나보냈습니다. 8년 반의 시간을 두고 반복된 대형 참사 앞에서 망각을 경계하는 이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됩니다.’
기억은 힘이 세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억의 힘은, 기록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고 믿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돼도, 계속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역대 일본 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일본 각지를 다니며 재난을 부르는 문을 닫는 일을 가업(家業)으로 하는 ‘토지시’가 등장합니다. 닫힌 문 앞에는 ‘요석’을 박아 또 다른 재앙이 쏟아져 나오지 않게 봉인해야 합니다. 반복되는 참사에 우리 기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그 토지시와 같지 않을까요.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는 물론이고, 산불로, 폭우로, 지진으로, 혹은 스쿨존이나 일터에서 누군가 매일 죽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재난의 문을 함께 닫고, 어디 열린 문이 없는지 미리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요.
2014년 4월, 그해로부터 열 번째 맞는 봄입니다. 올해는 유독 꽃이 빨리 피고 졌습니다. 다시는 꽃 같은 생명이 일찍 지지 않게, 우리 같이 문단속을 잘 해보자고 다짐하는 4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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