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다. 담임 선생님 권유도 있었지만, 수업을 빼먹으려고 백일장에 나갔다가 1등을 먹었다. 그때의 두근거림이 좋아 시 읽기를 즐겼고 줄곧 시를 써왔다. 20년 가까이…. 박희준<사진> 강원도민일보 기자가 제41회 ‘시와정신’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년 가까이 ‘설국열차’에 몸을 싣고 어두운 터널을 달리다 이제야 세상 밖으로 나온 기분입니다. 주변에서 절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저 아직도 글쟁이로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것입니다’라고 전하는 포스트잇과 같아요.”
당선 소감을 이렇게 전한 박 기자는 등단 제도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구직할 때 면접을 보듯, 문학에서도 심사를 거쳐 작품의 경중을 따지는 게 맞냐”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등단하려 애쓴 이유는 시를 계속해서 쓰고,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다. 예심도 오르지 못한 경험을 뒤로하고 언론사 신춘문예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박 기자의 수상작은 ‘나는 자주 역을 지나쳤다’ ‘푸른 번식’ ‘병명 미상’ ‘토끼는 굴속에서 장례를 치른다’ ‘일부 상품 제외’ 등 5편. 심사위원단은 “시인이 경험한 젊은 날의 고뇌가 깃든 순간을 공간적으로 형상화했다. 청년기의 심리적 세계를 비유, 빛을 향해 나아가는 지난한 순간들을 잘 펼쳐주고 있다”고 평했다.
그가 지금까지 쓴 시는 30편쯤, 백일장에 나가 쓴 작품까지 포함하면 50편쯤이다. 꽤 신중한 편이라 시구 하나를 쓸 때도 고르고 고르는 편이지만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 시를 착상한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배고플 때 ‘뭐라도 먹어야겠다’라고 생각이 드는 것처럼 시도 마찬가지죠. 생각날 때마다 메모하고, 작든 크든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을 때마다 써야겠다고 맘먹어요. 혼자 침잠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극을 받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는 2011년 중도일보에 입사해 5년간 편집기자로 일하며 주말 여행섹션 기사도 썼다. 그러다 문득 독립하고 싶어 연고도 없는 춘천으로 왔다. 남이섬 홍보마케팅팀, 강아지숲테마파크 홍보마케팅팀에서 6년 넘게 근무하다가 작년 6월 강원도민일보에 들어왔다. 그는 “편집기자와 시인은 매우 닮았다”며 “지금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걸 겹경사라고 하나. 3월 말에는 강원문화재단에서 ‘예술첫걸음 지원사업’에 선정됐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시집을 낼 수 있는 출판비를 지원받게 된 터라, 작품을 더 써서 연말이나 내년 초에 시집을 펴낼 계획이다. 그렇게 박 기자는 20년 전에 간직한 시인의 꿈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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