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자 사회를 술렁이게 만든 연재물이 있다. 인생 2막으로 ‘노가다(막일)’를 시작한, 나재필 전 충청투데이 기자의 ‘막노동 일지’다. 편집국장까지 했던 사람이 신문사를 그만두고 ‘노가다꾼(건설 노동자)’이 됐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을까, 지난달 22일 오마이뉴스에 첫 글을 올린 이래 그의 연재물은 매번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진정성 있는 글에 가슴이 뭉클하다’, ‘기자님의 인생 2막을 응원한다’ 등 대개 욕설 일색인 포털 댓글조차 따뜻한 응원 글이 주류인 모양새다.
나재필 전 기자는 지난 2018년 초, 충청투데이를 퇴사했다. 편집국장, 논설위원까지 승승장구하며 27년간 일했지만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 또 “제 2의 삶을 예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며 어느 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를 나왔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는 “머리(정신)로 먹고 살았으니 이젠 육신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재직 시절 취재와 편집은 물론 사설과 칼럼 작성에 광고 관리까지, 몸은 한 개인데 일곱 가지 업무를 하면서 그는 알약 한 움큼씩을 입에 털어 넣어야 머릿속에서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노동에 시달렸다. 퇴직을 결심한 다음날, 건설 기초안전교육부터 곧바로 이수한 것도 이 교육을 받아야 건설현장에 취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만 막노동을 업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 안 해본 일이라 두려웠고, 무엇보다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아내 역시 ‘노가다’를 해보겠다고 말하자 펄쩍 뛰었다. 그 나이에 무슨 막일을 하느냐고 핀잔까지 줬다. 나 기자는 “하지만 설득했고 내가 이겼다(웃음)”며 “얼마 전엔 장성한 두 아들에게도 고백했는데, 자식들은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기꺼이 내 길을 응원해줬다. 아빠의 새 일이 조금은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고 고마워했다.
막노동은 지난해 9월 시작했다. 인력중개사무소를 거치는 일반건설현장과 대기업 건설현장, 크게 두 부류로 막노동이 나눠지는데 그는 운 좋게 후자에서 일하게 됐다. 대기업 건설현장은 업체에 소속돼 월급을 받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퇴근만 하면 일당이 나오고 특히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심한 노역을 강요하지 않는다. 호칭도 ‘나씨’가 아닌 ‘나 반장님’이다. “한마디로 젠틀한 편”이다. 나 전 기자는 이곳에서 6개월간 결근 없이, 근성으로 일했다. 20~30대도 숙취로 휴무하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안 나올 때가 많은 곳이다. 나 전 기자는 “물론 나도 이곳저곳 아픈 곳이 있긴 하다”며 “그래도 참는다. 만약 시도 때도 없이 쉰다면 이 일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하루는 새벽 4시30분에 시작한다. 겨울이면 빛도 없는 데다 뼈마디 사이사이 한기마저 느껴지는 시간대다. 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 그는 가장 먼저 찬물에 세수부터 한다. 든든하게 밥을 차려먹고 내복을 세 장 껴입어 중무장을 한 뒤엔 시내버스나 오토바이를 이용해 출근한다. 그는 요즘 비계(飛階,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팀에서 ‘양중’일을 한다. 양중은 밀차나 대차, 수레 등을 이용해 자재를 옮기는 일을 말한다. 그렇게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일하면 1공수, 오후 7시30분까지 일하면 1.5공수(연장), 밤 10시30분까지 일하면 2공수(야근)다. 그는 요즘 일주일에 1공수 1회, 1.5공수 4회를 뛴다.
다행히 “일당은 썩 괜찮은 편”이다. 조공(초보자) 기준 열심히 일할 경우 한 달 700~800만원을 받는데 나 전 기자는 평균 400만원, 토·일요일 없이 뛴 달엔 세후 53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만족스러운 벌이가 위안이 된다”며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고 아들들에게 통닭 쿠폰을 마음껏 쏠 수 있잖은가. 그 간단한 씀씀이가 행복감을 준다”고 말했다.
다만 나이 먹어 힘쓰는 일을 하니 그의 몸은 성한 곳이 없다. 팔, 다리, 어깨, 무릎, 팔꿈치 등이 쑤시는데, 운동이나 취미활동으로 생긴 통증과는 다르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토요일은 진통제 처방과 관절 치료를 받는 데 쓴다. 노동 강도가 높아서 그런지 식성도 바뀌었다. 막노동을 시작하기 전 고기를 무척 싫어했는데, 힘이 부치다보니 어느 날 고기가 당기기 시작해 많을 땐 일주일에 4번이나 삼겹살을 먹었다고 했다. 시간과의 싸움 역시 막노동의 힘든 점이다. 하루가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그는 가끔 세상이 멈춘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 전 기자는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겉으로 번지르르한 것과 속으로 꽉 찬 것은 다르다”고, 기자 시절 꽤 치열하게 살았지만 “지금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최근엔 ‘막노동 일지’ 5회 차의 제목을 ‘기자보다 노가다가 좋은 10가지 이유’로 달았다. 나 전 기자는 “현재 동료들에게 기자였던 과거를 얘기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라며 “언젠가 동료가 포털사이트 프로필에 떠 있는 그 사람이 당신이냐고 슬쩍 물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며 시치미를 뗐다. 난 오늘도 그냥 노가다꾼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시작한 건 단지 ‘노가다꾼’에 대한 폄훼가 싫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진정성을 알리고 싶어서, 또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 남편, 사위로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의 애환을 보듬고 싶어서 글을 투고했다. 나 전 기자는 “훗날 내 노동일기가 노동자들에게 자그마한 위안이 되고, 청춘들에게 노동의 참가치를 일깨워주는 소소한 징검다리가 되길 소망한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자리가 끊이지 않는 한 계속 (일용 노동자로) 도전할 생각이다. 마음속에 항상 전원의 삶이 자라나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지금, 현재를 더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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