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포대 무게… 온몸 쑤셔도 사건 현장 앵글 잡고 "큐, 큐, 큐!"

[기자 25시] 서다은 KBS 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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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기자의 하루는 예측하기 어렵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사고가 터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서다. 지난 9일 바로 옆에서 지켜본 KBS 보도영상국 사건팀 소속 서다은 촬영기자의 하루도 마찬가지였다. 늘 카메라 프레임 밖에 있는 촬영기자의 일상을, 이날만큼은 프레임 안에 담았다.


입사 5년차에 사건팀 경력도 5년째인 서다은 KBS 촬영기자는 동료들에게 건네는 인사로 지난 9일 일정을 시작했다. 당직이 아니면 보통 오전 8시40분쯤 KBS 신관 3층 보도영상국으로 출근했다가 그날그날 사건·사고 현장으로 향하곤 한다. 이날 오전 9시10분, 서 기자에게 취재현장이 배정됐다. 목적지는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 소재 38번 국도 인근. 약 20km를 난폭하게 달리던 화물차 운전기사가 경찰의 실탄 경고에도 도주하다 사고를 내고 붙잡힌 곳이었다.

서다은 KBS 촬영기자가 경기도 평택시 소재 국도에서 발생한 화물차 난폭운전 사고 현장을 지난 9일 촬영하고 있다. KBS 서울 본사 보도영상국 촬영기자 100여명 가운데 여성은 6명이다. 방송사 중에서 여성 촬영기자 수가 가장 많다. /김달아 기자


서 기자와 동행하는 취재기자는 한 기수 선배 문예슬 기자다. 두 사람이 일일 짝꿍이 된 과정은 이렇다. 취재부서인 사회부 사건팀이 내부망에 취재일정을 올리면, 사건영상캡인 박찬걸 기자가 해당 아이템에 촬영기자를 배정한다. 이날은 문 기자가 맡은 취재일정에 서 기자가 배치된 것이다.


서 기자는 평택 화물차 사고 현장에 다녀오라는 캡의 말을 듣곤 먼저 나온 기사가 있는지 찾아보며 대략적인 사건 현황을 파악했다. “오늘 취재 장소는 사건·사고 현장의 정석 같은 곳이네요.” 이어 지도 앱으로 실제 거리 사진도 살폈다. “촬영하기 어려운 장소일 수도 있으니까 거리뷰로 미리 알아보는 편이에요.”

경기도 평택시 소재 국도에서 발생한 화물차 난폭운전 사고 현장에서 서다은 촬영기자(왼쪽)와 문예슬 취재기자가 이날 촬영한 영상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김달아 기자


KBS 시스템상에서 취재기자·촬영기자 배정이 확정되면 두 사람에게 서로의 연락처가 문자메시지로 전송된다. 메시지를 확인한 서 기자가 분주해졌다. 곧장 문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안녕하세요. 지금 현장 상황 어떤가요? 네네. 알겠습니다. 곧 봬요.” 구체적인 사건 개요와 현장 특징을 전해 들은 서 기자는 또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어 오디오맨 배정과 차량 배치를 요청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향한 곳은 장비실. 저마다 촬영기자 이름이 적힌 ENG카메라 수십대가 열을 맞춰 놓여 있었다. 여기서 오디오맨 김다운씨와 만난 서 기자는 자신의 ENG카메라와 삼각대, 중계차처럼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무선통신망으로 전송하는 장비인 MNG를 챙겨 나섰다. “현장 나갈 때 취재기자, 촬영기자, 오디오맨, 형님(취재차량 운전기사) 이렇게 4명이 짝꿍으로 움직여요.” 오전 9시40분, 이들이 탄 승합차가 평택으로 출발했다.

ENG카메라=조금 무거운 가방?

“화물차가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면서 순찰차 3대, 승용차 2대를 들이받았어요. 범행 경위는 조사 중이고요. 제보영상이 여러 개 들어왔는데 일단 현장 도착하면 주변 건물에서 CCTV 영상 확보할게요.” 달리는 취재차 안, 담당 경찰과 통화를 마친 문 기자가 서 기자에게 지금까지 파악한 상황을 공유했다. 두 사람은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주고받으며 이날 일정을 상의했다. 2시간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서 기자는 화물차 운전기사가 사고를 낸 지점을 잠시 훑어본 뒤 인근 건물을 찾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사건 현장인 도로를 폭넓게 담기 위해서다.


“뭐 촬영하려고요?” 건물에 들어서자 관리소장이 다가왔다. “바로 앞 도로에서 발생한 화물차 사고 현장을 촬영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서 기자와 오디오맨 다운씨는 관리소장에게 안내받아 건물 꼭대기 층으로 움직였다. 그때 관리소장이 커다란 ENG카메라를 어깨에 멘 서 기자에게 물었다.

“그거 무게 많이 나가죠?”
“7~8kg 정도예요.”
“어휴, 양쪽 어깨 교대로 메야겠다.”
“네. 균형을 맞춰야 해서요. 하하하.”

KBS 서울 본사 보도영상국 촬영기자 100여명 가운데 여성은 6명이다. 방송사 중에서 여성 촬영기자 수가 가장 많다. 최연송 KBS 보도영상국장(왼쪽)은 서다은 기자를 포함한 여성 기자 6명이 "새 길을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건물 밖으로 나온 서 기자는 화물차 운전기사가 붙잡힌 곳으로 바로 가지 않고 주변을 돌며 촬영했다. “저 같은 경우는 당장 사라질 현장이 아니면 먼저 주변부터 한 바퀴 돌아보고 가는 스타일이어서요.” 서 기자는 ENG카메라를 어깨에 올렸다가 내렸다가 삼각대 위에 올렸다가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 카메라에다 삼각대 무게까지 더하면 10kg에 달하는데도 번쩍 들어 올려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정말 안 무거우세요?” 이번엔 직접 물어봤다. “무겁기는 한데 그냥 조금 무거운 가방을 드는 느낌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가방에 뭘 많이 넣고 다니는 보부상이라서요. 친구들이 제 가방을 보고 거북이 등딱지라고 부를 정도였어요.(웃음)”


‘조금 무거운 가방’이라지만 매일 오랜 시간 들어야 한다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촬영기자들은 각종 정형외과 질환을 앓는다고 한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서 기자는 2021년 큰 사고를 겪기도 했다. KBS 창원총국에서 근무하던 당시 고분군 발굴지를 촬영하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불행히도 ENG카메라가 그의 왼쪽 무릎을 찍는 바람에 인대가 파열됐다. 결국 병원 신세를 지고 한동안 목발 생활을 해야 했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 가끔 무릎이 찌릿하면 비가 오려나 보다 해요.(웃음)”

서다은 KBS 촬영기자가 경기도 평택시 소재 국도에서 발생한 화물차 난폭운전 사고 현장을 지난 9일 촬영하고 있다. KBS 서울 본사 보도영상국 촬영기자 100여명 가운데 여성은 6명이다. 방송사 중에서 여성 촬영기자 수가 가장 많다. /김달아 기자

큐, 큐, 큐!

주변 촬영을 마친 서 기자와 추가 취재를 끝낸 문 기자는 화물차 운전기사가 체포된 지점에서 다시 만났다. 화물차가 넘어지면서 생긴 파편들과 잔해물들이 흩어져있었다. 이곳까지 마저 촬영한 서 기자는 현장에서 취재기자가 직접 카메라 앞에 서는 ‘온 마이크’를 준비했다. 두 사람은 문 기자가 미리 써둔 기사를 보며 어디서 촬영할지, 어떤 부분을 부각할지 상의했다. 서 기자는 카메라 앞에 선 문 기자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고 옷깃에 헐겁게 달려있던 핀마이크를 단단히 고정했다.


서 기자가 신호를 보냈다. “큐!” 문 기자는 준비한 기사 문구를 술술 읽어 내려갔다. “A씨(화물차 운전기사)가 잡힌 곳은 주택가가 밀집한 왕복 8차선 도로입니다. 차량이 넘어지면서 깨진 유리 파편들이 아직도 이렇게 도로에 흩어져있습니다.”


“다시 갈까요?” 서 기자가 말했다. 이어진 두 번째 시도. “다시 한번 갈게요.” 이번에도 서 기자의 제안이었다. “선배, 몸은 고정해주시고 팔만 움직여볼까요?” “한 번 더 가볼게요.” “한 번만 다시 갈까요?” 몇 차례 더 “큐!”가 들리고 나서야 두 사람은 방금 촬영한 영상을 모니터했다. 이제 끝났나 싶었는데, 서 기자가 촬영을 한 번 더 요청했다. 앞선 촬영본이 마음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후 서너 번의 시도 끝에 촬영을 마무리했다.


취재일정이 배정된 순간부터 현장을 촬영하는 내내 서 기자의 꼼꼼함이 돋보였다.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흔한 유리 파편이라도 사건을 보여주는 소재라면 다양한 각도로 접근해 여러 번 촬영했다. “특별한 건 아니고 그저 기본적인 사건·사고는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자세히 찍어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가 매 순간 공을 들인다는 걸 동료들 역시 느끼고 있었다. 문 기자는 “다은기자가 배정되면 그날 하루는 수월하겠다는 생각부터 든다”며 “항상 먼저 취재 아이템이 어떤 성격인지 뭐가 필요한지 물어봐 준다. 촬영하고 오면 빠지는 그림이 없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아주 많은 기자”라고 했다.

문 기자는 서 기자의 특별한 습관도 귀띔했다. “다은기자는 현장에서 고민을 진짜 많이 하거든요? 고민할 때 이런 포즈(관자놀이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골똘한 표정을 지으며)를 해요. 마치 명탐정 코난이 실마리를 찾을 때 안경이 번뜩하는 것처럼요! 그러면서 ‘음 선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하는데 진짜 멋있어요. 그때마다 굉장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거든요.”


현장을 떠나 뒤늦게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이번 기사가 킬됐다(뉴스에서 빠진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 나온 더 중요한 이슈들에 자리를 내준 셈이다. 결국 ‘난폭운전 도주 화물차 사건’은 서 기자가 촬영한 영상이 들어가지 않은 단신으로만 보도됐다. “열심히 촬영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런데 기자협회보 취재는 괜찮나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얘깃거리가 안돼서 어떡하죠. 아침에 챙겨온 MNG로 현장 중계하는 모습도 보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2시간을 달려 보도영상국으로 돌아왔다. 서 기자는 카메라에서 이날 촬영한 영상이 담긴 디스크를 빼낸 뒤 케이스에 담았다. 그 앞에 촬영 날짜와 취재개요, 취재기자, 촬영기자, 오디오맨, 부서명을 적어 인제스트룸에 전달했다. 해당 촬영본은 디지털화를 거쳐 아카이브에 저장된다. “키워드로 검색하면 어떤 영상이든 찾아볼 수 있어요. 이번엔 쓰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른 영상에 활용될 수도 있으니까요.”

새 길을 개척하는 기자들

서 기자를 따라다니며 보도영상국을 둘러보니 촬영기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다른 방송사도 비슷한 풍경일 것이다. 그럼에도 KBS는 방송사 중에서 여성 촬영기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이다. 현재 KBS 본사 소속 촬영기자 100여명 가운데 여성은 6명이다. 최근 5년 사이 여성 채용을 대폭 늘린 결과다. 2019년 서 기자를 포함해 여성 2명이 입사했고 지난해에도 2명이 더 들어왔다. 최연송 KBS 보도영상국장은 “새 길을 개척해가는 기자들”이라고 치켜세웠다.


서 기자가 ‘촬영기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건 영상을 향한 관심 덕분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영상을 다루는 일로 진로를 정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촬영과 편집을 배웠고, 실습 과정 중에 상업 영상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을 마주하면서 또 다른 길을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영상을 다루면서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요. 상업 영상 현장을 경험해보니 조금 더 안정적인 직업이 제게 잘 맞겠더라고요.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뭐가 있을까. 열심히, 정말 열심히 찾아봤어요.”


그 끝에 ‘촬영기자’가 있었다. “이 직업을 찾고 너무 놀랐어요. 나한테 이렇게나 잘 맞는 일이 있다니!” 2019년 그가 응시한 KBS 촬영기자 채용 시험은 서류, 필기(상식·논술), 면접으로 진행됐다. 최 국장은 “촬영이나 편집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모두 여기 들어와서 배운다”며 “저널리스트로서의 가치관, 사회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관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 영상에 관심이 있다면 촬영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입사 후 5년이 흐른 현재, 서 기자가 그렸던 미래는 실현됐을까. O·X로 묻는다면 “O”라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기자로서 종종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현장에서 호의적이지 않은 분들과 마주할 때나, 슬픈 일을 취재하는데 감정이 메마른 저 자신을 보면 자괴감이 들어요. 그래도 디지털이 활발해지면서 보상받는 기분이에요. 열심히 찍고 편집한 영상에 조회수, 댓글로 실시간 피드백을 받으니까 정말 소통하는 것 같아요.”


촬영기자로서 더욱 성장해나갈 그의 다음 미래도 궁금했다. 아까 문 기자가 언급한 포즈로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서 기자가 말했다. “지금까지 사건팀에 있으면서 주로 사건·사고 위주의 1분30초짜리 영상을 만들어왔는데 나중엔 호흡이 긴 시사물도 촬영해보고 싶어요. 제가 능력이 될진 모르겠지만요.” 서 기자가 꾸는 이 꿈도 언젠가 이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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