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은 115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이날, 미국의 1만5000여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궐기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요구한 건 ‘빵(생존권)과 장미(참정권)를 달라’는 것이었다.
2023년 현재,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빵과 장미를 달라는 외침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지 모른다. 중요한 건 빵의 크기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가 OECD에 가입한 1996년 이후 줄곧 1위라는 사실을 재차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8만9000원을 받는 데(2021년 기준)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국내외 각종 통계와 조사를 봐도 확인되는 것은 합리적인 ‘차이’가 아닌 ‘차별’이다. (경향신문, <여성이 평생 못넘는 벽 ‘28~30세 남성’>) “직무, 직종, 사업장이 같은 남녀 간의 임금 격차도 주요국 중 최상위권”이라면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여성들이 계속 ‘빵빵’대야 하는 이유다.
그런 외침들을 신문은 똑똑히 전하고 있을까. 8일자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들을 펼쳤다. 주요 신문 중 여성의 날 특집 기사를 실은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 지난달 말부터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를 주제로 심층 보도를 하고 있는 경향신문은 이날 홀로 일하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실태를 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1면과 8면에 실었다. 한겨레는 특집 기획으로 ‘미투 운동 5년’을 돌아봤다. 국민일보는 종교면에, 한국일보는 1면과 6면 사이드에 여성 인권에 관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실었다. 나머지 신문은 여성의 날을 앞두고 국내외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이나 시위 소식을 한 장의 사진으로 전했을 뿐이다.
같은 날 서울신문은 ‘인구가 모든 것이다’란 기획 기사를 1~3면에, 중앙일보는 ‘출산율 0.78의 나라’ 기획을 1면과 4~5면에 비중 있게 보도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원인과 해법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성평등 문제를 언급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여성의 날에, 저출산 현상을 조명한 신문조차 성차별 이슈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여성의 날에 즈음해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이 올해도(11년째!) 꼴찌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건조하고 무심하게 다뤄질 뿐이다.
일, 육아, 안전 등 각 분야에서 차별과 불안을 호소하는 여성들의 아우성은 사회면 한 귀퉁이 사진 한 장으로 다뤄질 만큼 사소하지 않다. 당장 이 같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뉴스룸 내 주요 보직자들의 성비가 남성에 현격히 기울어 있다는 점부터가 가볍지 않은 문제다. 어떤 매체, 어떤 부서에서 어떤 주제의 기사나 칼럼을 쓰든 ‘여성’이란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더 심한 차별과 공격적인 언사에 시달리는 동료 여성 기자들의 고충 또한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정부가 들어섰다고 성평등 이슈를 진영 논리에 가둬놓아서도 안 된다. 성평등은 세계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가치이자 목표다. 언론은 이를 실현하고 실천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책임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나아질 거라고? “저절로 좋아지는 건 없다.” 더 많은 여성이, 그들의 (남성) 동료들이 연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내년 여성의 날엔 이들의 ‘빵빵’거림에 우리 언론이 다양한 응답을 내놓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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