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63빌딩보다 높은 풍력발전기 200대? '갈등의 섬' 된 추자도

[지역 속으로] 추자도 해상풍력 40여 차례 연속보도
신익환 KBS 제주방송총국 기자

제주도에서 뱃길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추자도.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제주의 ‘섬 속의 섬’인 이곳이 요즘 시끄럽다. 추자도 서쪽과 동쪽 해역에 추진되고 있는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 때문이다.


민간 사업자가 추자도 해역에 3GW 규모의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제보를 접한 건 지난해 7월쯤. 곧바로 취재에 돌입했다. 3GW는 원자력 발전소 3기와 맞먹는 규모로, 대략 3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그렇다면, 풍력발전기는 얼마나 설치해야 할까? 일단 사업자 측은 15MW 또는 20MW 풍력발전기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15MW 풍력발전기의 경우 수면으로부터 높이가 280m가 넘는다.

KBS제주는 추자도 해역에서 추진된 해상풍력 사업과 관련 주민 갈등, 사업 추진 절차 논란 등의 취재를 지난해 7월부터 이어오고 있다. 추자도 외에도 제주도 서쪽과 동쪽 해역에 은밀하게 추진되는 해상풍력 개발 사실도 보도했다. 사진은 추자도 전경. /신익환 제공

63빌딩보다 높은 풍력발전기만 200기?

서울 63빌딩 높이가 249m로, 3GW를 채우려면 63빌딩보다 높은 15MW 풍력발전기 약 200기 정도가 필요하다. 물론 근해는 아니지만, 추자도 양쪽 해역이 63빌딩보다 높은 풍력발전기로 둘러싸이게 된다. 상상만 해도 정말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추자도 해상풍력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 어민들이 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추진되는 해상풍력 사업의 경우 황금어장을 잃게 되는 어민들이 강하게 반대를 하는데, 추자도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간 사업자 측은 지난 2021년 9월 추자도 어민들로 구성된 추진위원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6월에는 추진위원단과 사업자 측이 협약을 통해 약속한 ‘상생 자금’을 지급했다. 해녀에게는 300만원, 선주의 경우 최대 1000만원까지 지급됐고, 대상은 200명 정도였다.


민간 사업자가 어민들을 대상으로만 몰래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작은 섬은 발칵 뒤집혔다. 이내 반대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주민간 갈등은 시작됐다.

추자도 어민이 한 민간 사업자 측으로부터 받은 ‘상생 자금’ 통장 내역.

추자도 해상풍력, 사업 추진 절차도 ‘논란’


제주 도내에서 추진되는 풍력발전 사업은 ‘풍력 자원은 공공 관리해야 한다’는 제주특별법에 따라 공공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절차로 선진 모델로도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사업자 측은 발전사업 인허가 신청을 제주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에 할 계획이었다. 해상풍력 개발을 계획하고 있는 해상도 시·도간 경계 자체가 설정돼 있지 않고, 생산되는 전력도 제주가 아닌 전남도와 연결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 풍황계측기 설치를 위한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는 제주시에 받았다. 사업자 측의 판단 아래 독자적으로 절차를 진행했다.


해상풍력 개발을 위한 풍황계측기 설치라는 것을 인식했으면서도 허가를 내준 행정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추자도 해상풍력 관련 보도는 40여 차례 이어졌다. 추자도 외에도 제주도 서쪽과 동쪽 해역에 은밀하게 추진되는 해상풍력 개발 사실도 단독 보도했다.

추자도 서쪽 해역에 설치된 풍황계측기.

주변 국가 해상풍력 개발 사례 조명

이처럼 해상풍력 개발에 따른 주민 갈등 등 논란이 확산하면서 다른 국가들 사례가 궁금했다. 그래서 선택한 국가가 일본과 타이완.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의 유럽 국가들은 해상풍력에 있어 앞서 나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입지를 발굴하고 있다. 특히 어업에 지장을 주는 해역은 배제하고, 사업 초기 단계부터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었다. 타이완에서도 정부 주도의 입지 발굴을 통해 사업자를 공모하고 있다. 조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민감 해역은 개발 입지에서 배제했다. 특히 어업 피해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상에 나서고, 환경영향평가 과정에 시민 참여를 강화해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보도했다.

신익환 KBS 제주방송총국 기자

KBS, 해상풍력 개발 제도 개선 참여

이처럼 제주 해역을 대상으로 한 민간 주도의 풍력발전 개발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제주도는 지난해 12월 공공주도 2.0 풍력 개발 모델을 입법 예고했다. 제주에너지공사가 가진 공공주도 사업 시행 예정자 지위가 지난해 말로 만료됐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발표한 공공주도 2.0 풍력 개발 모델과 관련해 두 차례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KBS가 직접 참여했다. 제주도가 처음 발표한 개정안은 공공주도라는 표현을 썼을 뿐 민간에서 입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민간주도로 선회하는 모델이었다.


토론회 과정에서 여러 비판이 쏟아지자 제주도는 수정안을 다시 발표했다. 수정안에는 공공에서 입지를 정하는 계획입지 절차가 추가됐고, 제주에너지공사와 민간 사업자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을 추진하는 합동 개발 방식의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민간 사업자의 반대가 심한 상황. 일단 제주도는 더 이상의 공론화를 진행하지는 않고 조만간 공공주도 2.0 풍력 개발 모델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인 제주의 바람. 공공성 확보를 위해 앞으로도 관심을 두고 계속 취재를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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