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검증 부족, 미확인 정보까지 뒤섞인 '노조 혐오' 보도

노조 등 정부 지원금 받는 단체들, 이미 정부 시스템에 사용내역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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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노동조합에 대해 강경 발언과 대응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금·교육개혁과 함께 3대 개혁 과제로 내세운 ‘노동개혁’의 일환인 셈인데, 발언의 수위가 이례적일 정도로 높고 거칠다. 건설현장 노조의 불법 행위를 조폭(組暴)과 같이 폭력배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에 빗댄 ‘건폭(建暴)’이란 신조어가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고, 대통령실 공식 브리핑에서도 이 용어가 그대로 쓰였다. 대통령의 언어, 정치의 언어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일부 있었지만, 상당수 언론은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썼다. 어떤 경우엔 건설노조를 아예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건폭’이란 말을 처음 쓴 지난달 21일 이후 1주일간 기사 제목에 ‘건폭’을 쓴 언론 보도만 해도 100건이 훌쩍 넘는다.


건설현장이건 어떤 현장이건 불법 행위를 근절, 엄단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 사실을 묘하게 뒤튼 왜곡된 정보와 주장들까지 정부 당국의 입을 거쳐 언론 보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이를 “노조혐오 반저널리즘 행위”라고 규탄하며 “제발 질문을 하라”고 호소하고 나선 건 이런 이유에서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윤석열 정권의 노동탄압·노조혐오 규탄 및 언론의 공정보도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의 회계 투명성 관련 보도가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노동개혁의 출발은 노조 회계의 투명성 강화”라며 “지난 5년간 국민의 혈세로 투입된 1500억원 이상의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면서도 노조는 회계 장부를 제출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엔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나 “국민혈세인 수천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면서 사용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고, 이는 언론에 주요뉴스로 보도됐다.


마치 정부 지원금을 받고도 사용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히는데, 사실과 다르다. 노조뿐 아니라 정부 지원금을 받는 단체는 국고보조금 관리 시스템인 ‘e나라도움’을 통해 영수증 등 증빙 자료를 첨부해 사용 내역을 제출해야 한다. 현재 양대 노총이 “노조 자주성 침해”라며 반발하는 건 정부 지원금이 아닌 조합비 관련 회계 자료 제출이다. 노조법상 노조의 주요 재원인 조합비를 낸 조합원들에게 회계감사 결과를 공개하는 건 당연하지만, 정부의 제출 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국회 입법조사처는 “노조가 행정관청에 제출해야 하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관계를 팩트체크하거나 균형감 있게 전하는 언론 보도는 소수다.


<일 안 하고도 한 달 수백만원, ‘건폭’의 끝은 어디인가>(서울신문), <망치 안 잡은 ‘가짜팀장’ 월 1800만원…‘무법천지’ 절감>(서울경제), <‘월례비’ 뒷돈 243억원 갈취한 노조, 무법천지 건설 현장>(조선일보) 같은 기사와 사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국토교통부가 낸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노조나 현장 취재 등을 통해 교차 검증한 흔적이 없다. 특히 월례비에 관해 지난달 16일 건설현장의 오랜 관행으로 사실상 임금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있었음에도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기보다 노조의 일방적인 ‘갑질’인 양 초점을 맞춘 보도가 주를 이뤘다.


언론노조는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언론 보도 사례를 공유하고 “갈수록 선정적이며 선동적인 노동 관련 보도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모든 언론사와 기자에게 취재와 보도의 원칙과 책임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 발표를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는 반박은 객관성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면죄부를 줄 뿐”이라며 “무엇보다 이런 보도들은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 정책 발표를 면밀히 검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공정하고 균형잡힌 기자들의 취재와 보도를 도리어 ‘편파적’이라 여기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건 기본을 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건 노동부 장관이건 총리건, 노동조합에 대해 쏟아내는 근거 없는 혐오와 적대를 검증하고 질문하고 확인하라. 그런 다음 기사를 쓰고, 비판을 하든 옹호를 하든 하라”면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적대와 혐오가 아니라 건강한 토론”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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