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오전 취재를 마치고 무거운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보도 당일 기사와 관련된 취재원의 연락이 오는 순간 드는 오만가지 생각과 복잡한 그 기분. <연합뉴스 저연차 줄퇴사… “정신과 약 처방 받기도”> 기사가 기자협회보 지면에 실린 날이라 더 그랬는지 모른다.
“폭언, 욕설, 인격모독 등 직장 내 괴롭힘 문화가 만연하다”며 퇴사한 연합뉴스 저연차 기자의 글, “2018년 이후 입사자 가운데 11명이 회사를 떠났다”는 연합뉴스 노보를 보고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저연차부터 중간연차까지 연합뉴스 기자 여러 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부재중 표시를 남긴 기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엔 취재를 거절한 사람이라,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기사 하나로 끝내면 안돼요.” 전화를 받은 그 기자는 여러 말 대신, 이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통화 속 목소리는 어두웠고, 괴로워 보여 걱정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를 더 절망에 빠트린 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후배들 목소리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선배들 태도였다. 기사 하나로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다며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안을 더 챙겨보겠다”며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뭘 어떻게 더 써야하나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다. 고민만 하던 와중 지난달 15일 연합뉴스 2011년 입사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 문제 개선을 촉구하는 기수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그때 찬 바닥에 무릎을 꿇린 선배, 폭언을 퍼붓던 선배, 저급한 성희롱을 하고 낄낄거리던 선배에게 항의하지 않았던 데 책임을 느낀다”며 “우리의 침묵으로 고통이 대물림됐기에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낸다”고 밝혔다.
구성원이 다수 공감하는 사안에 대해 기수 성명이 올라와 다른 기수의 지지 성명이 나올 거라고 봤지만, 동조하는 움직임은 지금까지 멈춰있다. 대신 성명이 올라온 사내게시판엔 ‘당신들 잘못부터 제대로 사과하라’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건 “‘오르 갈굼’(‘내리 갈굼’의 반대말로 보인다)에 선배들도 정신과 다님” 등의 조롱하는 글들이다. 익명 게시판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뿌리 깊게 박힌 괴롭힘 문화, 팽배한 내부 불신으로 인한 위태로운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갈등 없는 조직이 있을까. 변화한 시대상에 맞춰 개인을 존중하려 노력하는 선배들도 더 많을 것이다. 다만 잘못된 조직 문화로 버티다 못해 상처 입은 사람만 떠나는 현실을 이제라도 직시하고, 구성원 간 인식 차가 어디서부터 악화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다행히 성기홍 연합뉴스 사장이 나서 기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고 한다. 주니어부터 시니어까지 또래별로 소그룹을 만들어 다음주부터 간담회를 가진다. 10년차 이하 사원 100여명과 사장이 화상회의로 만났던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방식이라고 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속적이고, 올바른 피드백이다.
분명히 해두고 싶은 건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문화가 연합뉴스만의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최근 나온 조선일보 노보(2월23일자)도 “계속된 문제제기에도 사라지지 않는 언어폭력” 문제를 다뤘다. 기자들이 보내고 있는 ‘위기 신호’에 이제는 제대로 된 응답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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