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러울수록 좋은 게 있다. 그래서 ‘이것만은 부디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입을수록 길이 들면서 부드러워지고 소매와 어깨 곳곳에 세월이 묻어나는 가죽옷이 그렇고, 들을수록 풍부해지는 음악이 그렇다. 인천 ‘씨싸이드(Sea Side) 경양식’에서 파는 돈가스도 그렇다.
인천 중구는 도시 전체가 근대 박물관이라고 평을 받는다. 동인천 일대와 신포국제시장, 차이나타운 등은 늘 그 모습 그대로다. 구도심답게 개발은 적고, 기존의 것이 명맥을 유지하기 때문이리라.
1989년 문을 연 뒤 줄곧 그 자리에서, 그 메뉴를, 그 맛 그대로 팔고 있는 씨싸이드 경양식도 마찬가지다. 35년이라는 시간이 식기와 테이블, 의자, 외관, 차림표 등에 고스란히 쌓여있다. 버스를 ‘뻐스’라고 부르던 그 시절처럼 간판 역시 시사이드가 아닌 ‘씨싸이드’ 아니던가.
메뉴는 단출하다. 돈‘까’스와 함박스테이크, 비프까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정식이다. 사이드는 밥과 빵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처음 찾은 이라면 정식을 추천한다.
처음 등장하는 것은 눅진하고 다소 텁텁한 수프와 야채 ‘샐러드’. 그릇을 비워갈 때 메인 음식이 나온다.
과거 경양식 돈가스의 명맥을 잇는 얇고 넓게 저민 돈가스다. 테이블의 절반에 이르는 큼직한 접시에 담긴 오늘의 주인공이다. 마카로니와 단무지, 완두콩, 베이크드빈이 그 주변을 둘러싼 플레이팅이 인상적이다.
달짝지근한 데미글라스소스와 눅진한 튀김옷은 최근 돈가스계의 대세로 자리잡은 일본식에서 느낄 수 없는 투박한 매력이다. 딸기잼과 곁들여 나온 둥근 빵은 또 어떠한가.
휴일 점심, 이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30~40대로 보이는 부모님과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한 그룹이 되어 한 식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 청춘의 맛을 다시 일깨우기 위해 찾은 것이리라.
고향을 떠난 나 역시 그랬다. 지난 설,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그때 앉았던 창가 쪽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주택담보대출 이율이 올랐고, 회사 진급에서 밀려났고, 탈모가 오기 시작했다는 등의 요즘 고민은 그 자리에서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마들렌이란 빵맛을 보고 잊고 있던 과거 기억을 떠올린다. 옛 시절을 떠올리고 싶은 이에게 씨싸이드 경양식을 추천하는 이유다.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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