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안 되는 이유

[이슈 인사이드 | 환경]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

2015년 4월 중순, 아직 눈이 덮여있는 설악산에 오른 적이 있다. 1박 2일에 걸쳐 강원 양양군 오색리~설악산 끝청봉 사이를 오르내린 당시 산행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예정지가 어떤 지역인지 직접 살펴보기 위한 취지였다. 등산로도 없고, 지형도 험준한 사업 예정지를 기다시피 올랐던 설악산에서 기자는 ‘환경영향평가서’나 보도자료 뒤에 숨어있는 ‘설악산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당시 찾아낸 첫 번째 ‘이유’는 안전성 문제였다. 기자가 지상에서 경험한 초속 19~20m에 이르는 강풍은 성인 남성이 뒤로 밀려나는 수준이었다. 그런 바람이 불 때 케이블카가 매달려 있을 수십m 상공에는 어떤 바람이 불까.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서에 강풍 대책이 일부 반영돼 있지만, 그 자료와 대책이 미흡한 탓에 전문검토기관 등은 안전성 확보가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만약 케이블카가 수십m 상공에서 강풍으로 인해 멈추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을까.


다음으로 설악산 케이블카에는 찬반 어느쪽도 아직 거론하고 있지 않지만 사실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바로 케이블카를 탔을 때 보이는 경관이다.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가 목적이라면 케이블카에서 보이는 풍광은 아름다워야 한다. 더욱이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백두대간 핵심구역 등이어서,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을 훼손하면서까지 만드는 케이블카라면 국내 다른 케이블카와는 구별되는 풍경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사업 예정지 꼭대기에서 본 풍경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설악산, 동해안의 매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다는 아예 안 보였고, 산쪽의 풍광도 특별하지는 않았다. 사실 현재 케이블카 예정 구간이 풍광에 있어 실격이라는 점은 양양군도 알고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하나 더 놓아야 한다면 현재 위치가 아닌 바다 조망이 가능한 다른 위치에 설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동안 개발 소외에 대한 보상이라면 양양군보다 더 소외된 지자체들도 많다. 케이블카를 반드시 양양군에 설치할 이유나 정당성은 어디에도 없다.


안전성, 풍광 외에 케이블카가 생태계에 미치는 불가역적인 악영향이나 지형 훼손은 이미 국책연구기관을 포함한 연구기관들이 충분히 입증해 놓은 상태라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 전문기관들이 모두 부정적인 의견을 제출했음에도 환경부는 2월27일 환경영향평가 협의에서 조건부협의(동의) 의견을 양양군에 통보함으로써 사업을 허가했다. 환경단체들은 윤석열 대통령 정책과제에 포함된 사업이라는 이유로 환경부가 사실상 사업자처럼 굴고 있다는 비판까지 제기하고 있다.


“숙원사업”을 이루게 됐다는 양양군과 강원도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국비 없이 자체 예산으로 1000억원이 넘는 사업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고. 그리고 매우 낮은 재정자립도의 강원도와 양양군, 특히 한 해 예산이 4000억원 안팎인 양양군이 1000억원이라는 거액을 인프라나 주민 복지 등 군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 대신 케이블카에 쏟아붓는 것이 맞는지도 말이다. 강풍, 경관, 재정 문제 중 하나라도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면 강원도와 양양군은 이제까지의 케이블카 추진은 모두 한바탕 촌극이었음을 고백하고, 사업을 접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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