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언론에 ‘쓰여지지 않는 노동’에 대해 자주 한탄하곤 했다. 매일 노동자가 일터에서 다치고 죽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파업을 해도 기사 한 줄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다. 간혹 대공장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하면 ‘귀족노조’ 프레임을 덧씌우는 기사들이 사회면 톱기사를 장식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노동, 그리고 노동조합 기사가 그야말로 ‘쏟아져’ 나온다. 사회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종합면, 경제면, 논설 꼭지에 이르기까지 지면도 다양하다. 다만 기사의 ‘톤’은 매우 획일적이다. 노동,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와 공격 일색이다.
맨 처음 ‘건폭’이라는 용어를 접했을 때 무슨 말인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입에 올린 그 말의 의미가 ‘건설노조 폭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쓴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언론에 의해 그 단어가 ‘건설노조’를 지칭하는 용어로 일반화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절망스러웠다.
‘건폭’은 대표적인 예시에 불과하다. ‘압수수색’, ‘회계비리’, ‘혈세낭비’, ‘노조폭력’, ‘간첩단’ 등 최근 기사에서 노동조합을 수식하는 용어들은 이처럼 원색적이고 자극적이다. 무엇보다 팩트체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야말로 ‘노동조합 혐오’에 기대어 ‘폭주하는’ 기사들이 넘쳐난다. 일례로 정부가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지적하자 언론들은 마치 노동조합의 임원이 회계감사를 겸임하거나, 아무나 지명해온 것처럼 언급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과거 노동조합 임원 경험이 있는 필자는 모든 노조에서 회계감사는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로 별도 선출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언론의 보도 행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해준 하나의 사례였다.
언론이 ‘건폭’이라는 충격적이고 왜곡된 말을 ‘대통령의 개혁 의지의 표출’이라는 설명만 듣고 ‘건설노조’를 지칭하는 용어로 둔갑시켜버리는 것을 보며 언론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했다. 동시에 기사의 파급력이 사회에 미칠 영향 때문에 두려웠다. 연일 팩트체크는 뒤로 한 채 낯뜨거운 용어 선택에만 혈안이 된 선동문이 ‘사설’로 올라온다. 기존 노동조합들은 모두 범죄집단이고 ‘정치적, 사회적 지위 향상’ 대신 ‘경제적 지위 향상’만을 꾀하는 새로운 노동조합만이 대안이라는 극단적 대비를 통해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층 불온적인 것이 된다.
보수층 구독자를 유지해온 수단으로서 뿌리깊은 노동조합 혐오를 활용해온 보수 언론사라고 하더라도 언론의 기본 원칙은 지켜야 마땅하다. 정부가 노골적으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노동조건을 불리하게 만드는 이른바 ‘노동개혁’ 정책을 쏟아낼 때 적어도 언론은 이해 당사자의 한 축인 노동 진영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해야 한다. 설령 정부가 노조를 압박하는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구독률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시류에 편승하는 데에만 급급하여 언론 본연의 책임마저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보도들이 거듭될수록 정부가 외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은 점점 실현 불가능한 과제가 될 것이다. 재벌 중심의 왜곡된 하도급 구조, 헌법이 보장한 파업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우리 법 체계, 자본가들에게만 이윤이 편중되는 그릇된 분배 정책 등 정작 개혁의 대상은 따로 있는데 언론은 그것들을 못 본 척 한 채 앵무새처럼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언론의 여론몰이 광풍 속에서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는 갈수록 요원해지는 것은 아닌지, 정말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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