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윤리는 어디에서 실패했나. 한겨레가 지난달 27일 편집국 간부와 김만배씨 돈거래 의혹 진상조사위원회 최종보고서를 공개했다. 신문사 외부위원 4명과 내부위원 9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이 두 달 가까이 사내외 인사 52명에 대해 대면·서면·전화 조사한 결과를 담았다. 80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금전거래의 구체적 내용과 내부 관계자의 사전인지 뒤 묵인, 언론 보도 직후 위기 대응, 보도에 미친 영향을 총체적으로 조사한 내용이 들어있다. 돈거래 간부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해 왜 윤리의식이 무뎌졌는지 살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동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특히 언론계가 그동안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선 엄정한 비판 대신 관대한 태도로 부적절한 행위에 생색내기 반성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한겨레의 진상조사 활동은 언론윤리 측면에서 새로운 전형을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추락한 한겨레의 신뢰가 즉시 회복되길 기대하긴 어렵다. 첫발을 뗐을 뿐이다. 뉴욕타임스가 2003년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기사 조작과 표절을 조사한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후 ‘윤리적 저널리즘’을 실천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기자들이 취재와 편집에서 지침으로 삼아 ‘말이 아닌 실천’을 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의 변화와 쇄신 약속이 어떻게 지켜질지 독자와 국민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문 1면에 알린 “한 번의 보여주기식으로 해결하지 않고 고통스럽더라도 단단하게 변하겠다는 다짐”이 어떤 구체안으로 보여질지 냉혹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겨레의 진상조사 활동은 언론계가 반면교사로 삼을 대목이 있다. 기자의 이해충돌은 적법성 여부로만 따질 수 없고, 고도의 윤리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사건의 돈거래 간부는 누차 “정상적인 차용”이라고 항변하며 “청탁이 없어” 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고 한다. 어불성설이다. 9억원이라는 거액을 빌리면서 처음에 차용증을 쓰지 않고, 변제시기 약속도 불분명했다는 점은 단순한 사인간의 금전거래 관행을 뛰어넘는 일이다. 취재 현장에서 맺은 친밀한 관계가 은밀한 뒷거래로 이어졌다. 돈거래를 한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법조기자라는 울타리에서 관계를 맺었다. 돈 많은 형이 사준 밥 먹고 골프 치며 경계심이 느슨해졌고,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법보다 밥이 끈끈했다.
이번 사건의 또 다른 교훈은 언론윤리 준수를 기자 개인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김만배씨와 기자의 금전거래 의혹을 다룬 첫 보도가 나온 뒤에도 관련 간부는 회사에 보고하지 않고 친분이 깊은 후배 부장에게만 알렸다. 그 부장은 10개월을 뭉개며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아 사건을 조기에 수습할 몇 번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한겨레가 창간 때 제정한 윤리강령과 윤리강령실천요강은 이 간부들에겐 사문화된 지침일 뿐이었다. 언론의 공적 영역보다 사적 친분관계가 더 크게 작동했고, 이를 바로잡을 시스템은 형해화된 상태였다. 한겨레 진상조사위가 제언했듯,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규정을 구체화하고 언론윤리를 뒷받침할 시스템을 제도화할 필요성에 공감이 가는 이유다.
언론의 신뢰가 추락하고 독자의 외면을 받는 데는 보도의 기준으로 삼은 엄격한 잣대가 스스로에게 무뎌지며 불편부당하다는 믿음이 깨진 데 있다. 한겨레를 향한 시선이 더 매서운 까닭은 독자와 국민이 요구하는 윤리기준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성찰을 통해 ‘신뢰의 한겨레’로 다시 바로서길 바란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