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1년… 다시 전장으로 간 특파원 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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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지난해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1년이 지났다. ‘1년’이란 기점을 맞아 다시 우크라이나와 주변국을 방문해 전쟁 취재를 진행한 특파원들의 보도를 소개하고 취재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를 전한다. 보도의 결과 내용엔 차이가 있지만 일반 시민과 군인, 고위 관료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전쟁이 바꿔놓은 삶과 사회, 국가의 모습을 전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취재는 지난달 24~28일 서면과 통화, 카카오톡 등으로 진행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 집회 참가자들이 대형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다. (AP/뉴시스)

#박은하 경향신문 유럽 순회특파원은 지난달 22일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1년> 기획을 이어오고 있다. 특파원 기간 머무는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달 15일 출발, 폴란드를 경유해 지난달 16일 우크라이나에 도착했고 이후 25일까지 키이우에 머물며 취재를 진행했다. 앞서 지난달 3~8일엔 이번 기획과 관련해 핀란드와 에스토니아에 취재차 다녀왔다. 박 특파원은 현지 취재를 간 이유를 묻는 서면 질문에 “경향신문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를 간 적이 없다. 그게 일종의 부채의식처럼 남아 있었다”며 “(애초) 키이우에 가려고 유럽 순회특파원을 지원한 것”이라고 지난달 27일 답했다.


기획을 통해 ‘변호사와 예능PD는 왜 총을 들었나’, ‘남편, 딸, 사위, 아들 모두 사라졌다...혼자 남은 스비틀라나의 소원’, ‘소년은 이제 구슬 대신 포탄 조각을 모은다’, ‘요가·공습경보 공존하는 일상...포화 속에서도 삶은 꺾이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일상...“어둠 속 승리의 빛이 보인다”’, ‘‘평화’란 말마저 뺏기고...러시아 망명 예술가는 공개를 들지 못했다’ 등 기사를 선보여왔다. 전쟁으로 삶이 파괴된 이들 중에도 기구한, 하지만 꺾이지 않은 사연이 모여 글자로 남았다. 또 하루 한두 번씩 공습경보가 울리는 전쟁 가운데 ‘요가 수강생이 전쟁 전보다 늘고’ ‘지하철역 노점상에서 꽃을 사가는’ 일상도 디테일하게 담았다. 다큐앤드뉴스코리아와 협업을 통해 함께한 사진기자 등의 참여로 좋은 사진은 물론 취재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전쟁에 대해 잘 모르는 게 그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 생각이라 본다. 일단 저부터도 몰랐고 답답했던, 가령 저런 결연한 저항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답을 알고 싶었다”며 “전쟁의 고통이든, 숭고해 보이면서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 궁금하기도 한 저항이든, 전쟁에 휘말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전쟁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은 했다. 무엇을 부각하겠다기보다는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2일자 경향신문 1면에 실린 우크라이나 전쟁 1년 기획 보도 캡처.

대부분 키이우에 머물며 전쟁 위협을 실감하진 못했지만 전쟁 중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은 없을 수 없었다. 버스로 키이우에서 체르니히우로 가며 겪은 세 차례 검문에서 무장군인들이 총구를 승객 쪽으로 향하며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겨눠진 것만으로도 공포감이 들었다. 그는 "적의를 갖고 나를 겨냥한 총구를 접했거나 더 심한 폭력과 학살을 겪은 사람들의 심적 트라우마가 어떨진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며 "18시간 탄 버스엔 어린아이도 있었는데 징징거리거나 보채지 않았다. 키이우 시내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었는데, 아이들도 비상상황이란 걸 충분히 알고 몸에 익힌 것인가 생각하면 좀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전투나 공세 상황을 살피는 것에 더해 이번 전쟁이 농업, 에너지 분야에 타격을 준 만큼 향후 이 문제에 관심 가지려 한다. 마음 같아선 “이번에 우크라이나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습을 쭉 기록하고 싶다.” 그는 이번 전쟁이 한국 언론의 전쟁보도에 전환점의 계기라고 생각한다. 외교부가 특별여권제도로 분쟁지역 취재를 제한하는 관행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나아가 ‘어떻게 하면 전쟁 취재를 제대로 할지’ 언론계 차원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인 취재원들이 한국어 기사를 번역기로 돌려 다 읽어봤다. 페이스북에 올린 취재후기도 마찬가지였다. 기사에서 틀리거나 과장한 게 있다면 그들 역시 확인하기에 매번 기사를 내고 나서 등줄기에 식음땀이 흘렀다”며 “바꿔 생각하면 한국 언론이 더 이상 한국어의 한계에 종전만큼 크게 갇히지 않는다. 세계의 더 많은 사람을 독자로 상정하면서 취재하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결국 이 전쟁을 우린 어떻게 봐야할지 큰 질문이 하나 남는다. 그는 “미디어는 새로운 것에 주목하지만 저쪽을 많이 죽이고 땅을 뺏는 전쟁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이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고 어떤 명분으로도 전쟁을 수단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신은별 한국일보 유럽 특파원은 지난달 24일 밤 10시(한국시간) 본보와 통화에서 키이우에 있는 한 카페라고 했다. 그는 오늘은 어떤 취재를 했냐는 질문에 “(전쟁 발발) 1년 되는 날이라 키이우, 집단학살이 있었던 부차 쪽에서 오전부터 추모, 애도 미사가 있어 거기 쭉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입국했고 이후 키이우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부차, 이르핀, 호스토멜, 르비우를 취재했다.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사정상 폴란드 국경을 넘어 26일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오는 일정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죽음과 삶을 함께 보고 싶었다. 한국 언론이 갈 수 없는 지역은 물론, 수도 키이우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고, 파괴된 건물들도 여전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라내지 않고 보여주고 싶었다”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고,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는 모습이 한국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렇게나 일상에 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한국에서도 조금 공감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체류 기간 <전쟁 1년, 우크라이나를 다시 가다> 기획을 통해 르포, 인터뷰, 영상, 스케치 기사 20여편을 송고했다. ‘“푸틴이 무슨 미친 짓 할지 몰라”...’전쟁 1주년 공습설‘에 떠는 사람들[르포]’이나 ‘몰살된 부대원 사진이 ’추모의 벽‘에 한꺼번에 걸린 날 키이우는 통곡했다[르포]’ 기사처럼 도시와 시민들 분위기를 전하는 르포 기사가 대표적인 한 축이다. ‘“러시아군이 시체 태운 냄새가 아직도...” 헤르손 탈출한 19세 애나[인터뷰]’ 같은 일반시민 인터뷰를 진행했고, 나아가 ‘젤렌스키 최측근 “한국과 우크라, 무기 지원 협상 ’분명히‘ 진행 중”’, ‘우크라 부총리 “한국이 주는 무기, 러시아 영토 공격에 쓰지 않아” 지원 호소’ 같은 고위 관료, '우크라이나 생존 군인 "죽음이 두려워도 죽도록 싸울 것이다"' 기사처럼 군인 인터뷰까지 내놨다.

<전쟁 1년, 우크라이나를 다시 가다> 기획이 실린 지난달 22일자 한국일보 2면 캡처.

특히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개와 고양이가 있는 동물 보호소, 전시 성폭력 관련 현지 전문가, 러시아가 저지른 민간인 대상 범죄를 기록해온 우크라이나 인권단체 관계자 등처럼 그간 국내 보도가 직접 취재해 다룬 적이 드문 현장, 인물을 다룬 경우가 많았다. 신 특파원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는 거 말고 인터뷰 취지를 담은 메일을 보내 설명과 설득을 하는, 늘 섭외할 때 하던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며 “사실 전쟁이라고 하면 언론이 보고 싶어하는, 아파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런 얘긴 트라우마가 되는 거라 물어도 하기 어려워 한다. 두 번의 취재에서 느낀 건 과거 얘길 해도 함께 지금 살아가는 얘기, 앞으로 살아갈 얘길 하려고 한다는 거였다. 그 부분이 잘리지 않고 같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로선 지난해 6월 방문 후 두 번째 현지 취재다. 전쟁 시작과 1년이 지난 시기, “두 번째면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있었다. “예전엔 도로에 모래주머니가 많았고 도로에 아무도 안 다녔는데 지금은 길거리에 배달 플랫폼 오토바이가 다닌다. 키이우 사람들이 ‘안 괜찮은 상황에서도 괜찮아진 것’이라 말하던데 그런 느낌”이었다. 교대 근무를 하는 군인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선 ‘죽을 위험이 많았고 무섭다면서도 다시 가야한다’는 말을 들으며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란 마음도 들었다.


하루 3~4시간을 자며 일했다. 우크라이나 입국 불과 며칠 전까진 튀르키예에 지진피해 취재를 했다. 그는 “다른 출장보다 시간을 좀 더 쪼개 쓰려고 한 것 같다. 제가 그리 정의감 넘치는 사람이 아닌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눈앞에 있어서 ‘취재하기 힘들다’고 투정을 할 수도 없었고, ‘한 시간만 움직이면 이거 하나 더 쓰는데’하는 생각이 유독 많이 들었다”며 "일상을 되찾으려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래도 여전히 전쟁터라서 완전한 일상을 담을 수는 없었는데 나중에 진짜 일상을 취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노지원 한겨레 베를린 특파원은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폴란드 접경 지역, 6월과 지난 연말연초엔 우크라이나에 다녀오며 이미 세 번 현지 취재를 다녀왔다. 그리고 전쟁 1년을 앞에 둔 시점엔 우크라이나 대신 주변 유럽국가를 찾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 유럽을 뒤바꾸다> 기획이 나온 배경이다. 노 특파원은 지난달 28일 전해온 서면 답변에서 “이번 전쟁은 비단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전 세계,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략) 전쟁으로 인한 이들 나라의 변화를 한국 독자들이 알기란 쉽지 않고 사실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이들 나라를 직접 찾아가서 현장을 둘러보고, 각 나라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당국자를 인터뷰 하기로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기획은 “이 전쟁으로 전후 70여년 동안 유지된 안보 태세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유럽나라들을 찾아” 한 개 국가 이상 단위의 변화를 살피는 넓은 시각으로 이 전쟁을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이에 따라 핀란드 헬싱키(북유럽), 에스토니아 탈린(발트3국), 독일 뮌헨을 방문해 취재를 진행했다. 이들 국가는 각각 전쟁 후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거나, 서방 군대가 전진배치됐거나, 군사력 강화에 나선 곳이다.


총 3부로 구성된 기획은 ‘핀란드, 국방비 20% 늘렸다...'군축·중립국' 사라지는 유럽’ 기사처럼 전쟁 후 각 국가의 내부 인식과 분위기를 현지 취재를 통해 전하고, 핀란드 국방정책국장 인터뷰 ‘“우크라 전쟁 뒤 핀란드 ’나토 가입‘ 찬성 여론 20%→87%”’를 세트로 제시해 총론과 각론을 함께 보여주는 식으로 이뤄졌다. 대면, 서면, 온라인 인터뷰로 만난 인사들은 독일 국방차관, 에스토니아 국방장관, 리투아니아 국방정책국장, 스웨덴 국제문제연구소장 등 직함만으로도 상당한 권위를 지닌 경우였다.

지난달20일자 한겨레 4면에 실린 <우크라이나 전쟁 1년, 유럽을 뒤바꾸다> 기획 캡처.

노 특파원은 취재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발언을 묻는 질문에 핀란드, 에스토니아 당국자의 말을 꼽았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과연 러시아를 상대로 이길 수 있냐는 현실론에 대해 “두 나라 당국자는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닌 승리해야만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이런 생각이 전쟁에서 변화를 만들고 그동안 존재했던 많은 예상을 깨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적어왔다.


지난해 3월 첫 취재는 회사 제안으로 다녀왔지만 폴란드 프셰미실 등 우크라이나-폴란드 접경 지역만 취재하며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에 6월 외교부로부터 예외적 여권 사용허가가 나자마자 회사와 합의해 키이우와 부차, 이르핀, 보로댠카, 드미트리우카 등 도시를 취재했다. 11월 베를린 특파원이 된 후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예 주요 업무가 된 상태다. 유럽 정치지도자들의 의사결정, 경제상황 모든 게 이 전쟁으로 연결되고 국내 난방비 문제도 관련될 만큼 거대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약 한 달 후 그는 대공습이 언급되던 시기 다시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 키이우를 찾아 연말, 새해를 보냈다.


그는 “실제로 러시아군은 지난해 마지막날에도, 새해 첫날에도 연일 미사일 공습을 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매일 느끼고 안고 살아야 하는 공포와 두려움, 예측불가능성, 무력감 등 다양한 감정을 저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계기였다”면서 “직접 현장에 가본 뒤에 쓰는 기사는 분명 외신 등을 참고해 쓰는 기사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아주 기본적인, 당연한 상식을 다시 한번 느끼고 현장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전했다.


노 특파원에게 이 전쟁을 우린 어떻게 봐야할까란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그는 “이 전쟁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21세기에 한 나라가 다른 한 주권 국가를 무력으로 침공했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러시아이고, 피해자는 우크라이나다. 이 점은 변하지 않고 어떤 것으로도 합리화 할 수 없다”면서 “냉철한 시각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분석해야겠지만 기자들은 국제 정치의 현실이란 거대 담론 속에서도 이 전쟁이 왜 시작됐는지, 이 전쟁에서 누가 무슨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지를 잊지 않고 보도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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